읽고 싶은 시

눈 내리는 길로 오라 / 홍윤숙

윤소천 2024. 1. 24. 08:08

                                            

               

               

 

눈 내리는 길로 오라

눈을 맞으며 오라

눈 속에 눈처럼 하얗게 얼어서 오라

얼어서 오는 너를 먼 길에서 맞으면

어쩔까 나는 향기로이 타오르는 눈 속의 청솔가지

스무 살 적 미열로 물드는 귀를

 

한 자쯤 눈 쌓이고, 쌓인 눈밭에

아름드리 해 뜨는 진솔길로 오라

눈 위에 눈 같이 쌓인 해를 밞고 오라

해 속에 박힌 까만 꽃씨처럼

오는 너를 맞으면

어쩔까 나는 아질아질 붉어지는 눈밭의 진달래

석 달 열흘 숨겨온 말도 울컥 터지고

 

오다가다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설레는 눈길 위에 자라 온 꿈

삼십 년 그 거리에

바람은 청청히 젊기만 하고

눈발은 따뜻이 쌓이기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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