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 은행나무가
그 집 앞에 서 있습니다
때가오니 한 그루는
순순히 물들어 황홀하게
지는 날 기다리는데
또 한 그루는 물들 기색도 없이
퍼렇게 서슬 진 미련 고집하고 있습니다
점잖게 물들어 순하게 지는 나무는
마음 조신함에 그윽해 보이고
퍼렇게 잘려 아니다 아니다 떼를 쓰는 나무는
그 미련하게 옹이 진 마음 알 수는 있지만
왠지 일찍 물든 나무는 일찍
물리를 깨달은 현자처럼 그윽해 보이는데
혼자 물들지 못하고 찬바람에 떨고 섰는 나무는
철이 덜든 아이처럼 딱해 보입니다
아마도 그 집 주인을 닮았나 봅니다
날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마주 서서
서로 다른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그 집 앞 가을이 올해도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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