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 대한 후회 / 정호승
나에겐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이 너무 많은 게 탈이었다 돈과 혁명 앞에서는 가장 먼저 가장 큰 자존심을 버려야했다 버릴 수 없으면 죽이기라도 해야 내가 사는 줄 알았다 칼을 들고 내 자존심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자객처럼 자존심의 심장에 칼을 꽂아도 자존심은 늘 웃으면서 산불처럼 되살아났다 어떤 자존심도 도끼로 뿌리까지 내리찍어도 산에 들에 나뭇가지처럼 파랗게 싹이 돋았다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이 너무 많아서 슬펐던 나의 일생은 이미 눈물로 다 지나가고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죽음의 자존심은 노모처럼 성실히 섬겨야한다 자존심에도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지 겨울새들이 찾아와 맛있게 먹고 가는 산수유 붉은 열매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