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수선화 水仙花 / 윤소천

윤소천 2024. 10. 4. 09:25

 

 

 

봄나들이 길에 순창 김인후 선생의

훈몽재訓蒙齋를 찾았다가 옆 농원에서 귀한

수선화 몇 분을 얻어왔다. 금잔옥대金盞玉臺

하는 거문도巨文島수선화로 내가 좋아하는

수선화다. 뜰 군데군데에 심었는데 어느새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금잔옥대는 여섯 개의 하얀

꽃잎 안에 황금빛 꽃송이가 꽃 잔처럼 오똑 서

있고 향기가 있는 기품있는 수선화다.

하얀 꽃받침에 작은 금빛 꽃송이가 종 모양

같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날 것 같다.

수선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도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해 씨를 맺지 못한다.

꽃이 지고 봄이 지나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한해 내내 땅속에서 동면하며 뿌리를

키워 번식한다. 그리고 이듬해 수선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수선화를

상징하는 꽃말은 자존심과 자기애 그리고

외로움과 고결이다.

수선화는 조선 후기에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이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수선화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추사는 제주도에서 8년 넘게 유배 생활을 하며

세한도歲寒圖를 남기며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하였는데, 외로운 유배지에서 고난의 시간을

들에 피어있는 수선화와 함께 지냈다.

“차가운 겨울이 송이마다 동그랗게

피어나니 /그윽하고 담백한 기품이 참으로 빼어나네 /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못 벗어나는데 /

물에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이는 추사의 시

‘수선화’다. 수선화水仙花라는 이름은 물가에

피어있는 선인仙人과 같다 하여 중국에서 전해왔는데,

중국에서는 새해에 좋은 기운을 가져온다고

하여 수선화를 들여놓는다고 한다.

우리 집에도 봄기운이 느껴지는 의재毅齋

허백련과 청당靑堂 김명재의 수선을 그린 그림이

거실에 걸려있다. 청당의 수선화는 바위

옆에 소박하면서 운치 있게 어우러져 있고,

의재의 수선화는 홍매화가 핀 고목 아래

새와 함께 금잔옥대 수선 몇 분이 피어있는데,

담백한 꽃과 푸른 잎의 부드러운

선이 우아하며 고매하다.

입춘이 되어 우리 집 뜰의 산수유

목련 매화가 꽃눈을 트기 시작하면 먼저

피는 것이 ‘아기 수선화’다. 그리고

금잔옥대 수선화가 무리 지어 핀다.

몇 해전 뜰에 있는 금잔옥대 수선화

뿌리를 벚꽃길로 유명한 절에 그곳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 보냈다.

이듬해 가보니 일주문 옆에서 무리를

아루고 피어 나를 반겼다.

수선화는 부활의 꽃이며 새봄을

여는 화엄의 꽃이다. 동면의 겨울을

보내고 수선화를 보면서 나도

새롭게 태어난다.

( 202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