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초반, 나는 사업을 하다 나라의
금융위기와 맞물려 실패를 보았다. 실업자가 되어
마음 둘 곳이 없어 기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대학시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심한 고초를 겪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택시 운전사가 된 후배를
만났다. 동변상련同病相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사정이 있는 날이면 내가 대신
땜빵 운전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아는 이를 만날까 두려워
모자를 깊이 눌러썼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하루 이십 여명의 승객이 타고 내리는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 사는 저마다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일에 흥미가 생기면서
신기하게도 불면으로 깊어진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다.
이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는데, 길의
노숙인과 길가 노점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의
모습들이 다시 보이면서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연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겪는 굴곡있는 고난의 삶도 하나의
인생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크레모나 지역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 명품이 된다는
것은 역경을 이겨냈을 때, 인생은 깊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권투선수는 강한 펀치를 맞고 얼마나
버티느냐가 중요하고, 바둑에서는 내가 어떤
수를 두었는지 복기를 통해 실력이 늘어 간다.
장자의 이야기 중, 제나라의 책 읽고
있는 환공과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의 대화가
있다. 장인은 환공에게 마차의 수레바퀴를
헐겁고 빡빡하지 않게 하려면 미묘한 손끝의
감각으로 맞추어야 하는 일이어서 자식이라
해도 말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 했고,
성인의 책을 읽어도 깨닫고 실천하지 못하면
읽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했다.
회갑기념으로 나는 차를 선물 받았다.
십년이 넘은 낡은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본 큰애의 마음 씀이었다. 여러 사정을
헤아려 나는 경차를 선택하였는데, 삼십 년
가까이 중형차를 타오던 나로서는 하나의
결단이었다. 차 키를 넘겨받아 첫 시승을
하는데 가볍고 운전하기도 편해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여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리고 '비움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을 떠올리며 자존심을 버리고 나를
내려놓는 것이 판안함을 느꼈다.
조상으로 부터 내려온 생활의 지혜로
창업 이백팔십 주년을 맞은 일본의 한 철물상의
가훈이 '병풍과 사업은 너무 펼치면 쓰러진다'
였다. 인생을 크게 보면 공평하여 공짜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인생 수업료라 한다.
이것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값으로는 따질 수 없다.
내가 좌절하여 방황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하시며
나를 다독였다.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고 한다.
이는 고난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사십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는
삶의 교훈을 배웠다.
( 무등수필.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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