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겨울 호수의 민낯 / 김효비아

윤소천 2022. 9. 6. 15:00

 

 

 

 

이렇게 바닥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 몰랐다면 

외눈박이의 변명이다

 

살아온 징검다리를 헤아리면서 몇 번쯤 발등을 찍었던

충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백치의 헛웃음이다

 

마른 억새처럼 건너가는 겨울 호수의

종아리에 푸른 멍 자국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땅 속의 실핏줄의 맥박은 발끝까지 뻗어가고

뿌리들의 숨구멍도 목울대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러니

철새들을 태운 배가 바닥까지 가라낮지 않았다면 이렇게

갈라지고 터진 西湖*의 뒤꿈치를 보았을까

 

그런데 아니다

본디 진흙바닥에 앉지 않으려는 연잎의 본능은

뿌리의 앙가슴 허파에서 부터

들숨 날숨으로 견디는 것 뿐

 

훤히 드러난 겨울 호수의

민낯을 보고서야

알았다

 

저기

 

허공과 바닥 사이

 

해오라기 한 마리도

겨울 호수의 민낯을 보았다.

 

 

* 西湖 : 광주시 서구 운천동에 위치한 운천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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