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북쪽 산록에서 발원한 창계천과
원효계곡의 물이 합수한 증암천(甑岩川)은 북서쪽으로
흘러 영산강에 이른다. 이곳 무등산 자락 일대가
일대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취가정,
환벽당,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등의 정자가
모여 있는 곳이다. 여기 '한국가사문학관'에는육백 년
전통의 문향이 배어있는 가사 문학작품집과
각종 유물, 누정에 얽힌 사연들이 전시되어 있다.
송강松江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가사가 병풍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송강의
친필과 면앙정俛仰亭 송순, 임억령 등 조선 중기
선비들의 유품이 있다. 정철의 송강집과 우암尤庵 송시열의
글씨 하서河西 김인후의 하서집, 미암眉巖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목판 등이 있고 특히 식영정의 산수화와
소쇄원 48경을 담은 그림에서 이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송순(宋純,1493-1583)은 여기 상덕마을에서
태어나 근처 제월봉(霽月峰) 아래 자신의 호를 따 ‘아래로는
땅을 위로는 하늘을 우러르며 풍월과 함께 늙어가리’라는
뜻으로 면앙정(俛仰亭)을 세웠다. 여기가 조선 시대
가사문학의 본산이다. 대숲 사이 돌층계를 오르면 참나무
고목에 에워싸인 시비와 함께 면앙정이 있는데,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난 홀가분함으로 자연을 노래했다.
백리 안의 여러 산이 평야를 에워싼 곳
시내(川) 가까이 겨우 초옥을 지었네
벼슬길 벗어난 자유로운 이 몸
갈매기와 더불어 좋은 짝을 이루었네
<면앙정 중 일부, 필자 옮김>
송순의 대표작인 면앙정가(俛仰亭歌)는
자연에서 느낀 흥취를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산과 들의
깊고 넓은 광활한 모습, 정자와 사계(四季)의
아침과 저녁 풍경을 노래해 송강의
가사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은 조부의
산소가 있는 이곳 담양에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송강이 학문에 정진했던 환벽당(環碧堂)은 ‘짙푸름이
주위를 두른 집’이라는 뜻의 정자로 아래에는
조대(釣臺)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성산(星山)을
바라보며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데 이 소나무를
성산송이라 부른다. 송강은 이곳에서 송순에게 가사를,
김윤제에게 정치와 행정을, 임억령에게 한시를,
김성원에게 거문고를 배우며 남도의 풍류를 익히고,
17세에 나주목사를 했던 김윤제의
외손녀와 혼인한다.
여기 지실마을은 송강이 살았던 곳인데
송강의 4남 기암畸菴 정홍명이 이곳에 계당溪堂을
짓고 송강의 작품을 집대성하여 펴낸 곳이다.
이곳 매화를 호남 5매(梅)중 하나인 계당매(溪堂梅)라
부르는데 봄이면 매화 향이 바람따라 송강의
문향처럼 퍼져나간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息影亭)은
송강이 ‘성산별곡’을 지은 곳으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성산별곡 시비 곁에 용트림을 하듯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식영정을 지키고 있다.
이 소나무 등걸은 작은 거북들이 하늘 바다를
오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증암천을 따라 내려가면
송강정(松江亭)이 있다. 송강정은 소나무 숲속으로
아흔 아홉 계단을 오르는데 배롱나무와
시누대가 노송과 어우러져 있다. 송강은 대사헌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사년 여를 머물면서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을 지었는데,
여인이 임을 연모하는 형식으로 임금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우리 가사문학 최고의 작품이다.
밤새 서리 내리고 기러기 울며
날아가는데 누각에 홀로 올라 수정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 떠오르며
북극성이 보여 임이신가 하여 눈물이
절로 난다. 맑고 푸른 저 빛을
임 계신 궁궐에 보내니 누각에 걸어두고
온 세상 깊은 골까지 환하게 비추소서.
<사미인곡 중, 추원(秋怨). 필자 옮김>
정자 앞에 흐르는 증암천을 송강(松江)
또는 죽록천(竹綠川)이라고도 하는데, 이 일대는
창평향교가 있는데 조선 초 중시(重試)를
보았던 곳이다. 송순은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백호 임제 등의
스승으로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원조이다.
이곳 증암천을 중심으로 한 정자문화는
호남 사람의 누정문학과 가사문학을 꽃피운
곳으로 우리의 선비정신을 보여준다.
( 한국수필 201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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