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소쇄원(瀟灑園)에서 / 윤소천

윤소천 2017. 3. 11. 13:06

 

내가 살고있는 담양 창평에서 가까운

가사문학관 주변은 식영정과 환벽당 그리고

소쇄원이 지척에 어우러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 건너 옛 창암촌에 들어선다. 작은

다리를 건너 좌우로 쭉쭉 뻗어 높게 자란

왕대 숲 사잇길로 들어서면 대숲

향이 풍겨온다.

여기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광풍각光風閣으로 가는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원림林의 정경이 가장 아름답다.

광풍각 아래에는 이끼 낀

바위틈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건너편

연못에서 대나무 홈통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광풍각 뒤로 산수유와 배롱나무

고목이 있는 협문을 지나면

제월당霽月堂이다.

이곳 원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광풍각과 제월당은 중국 송나라

시인이었던 황정견黃庭堅

애련설愛蓮說을 쓴 주무숙周茂叔의

사람됨이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한 데서 비롯한 말이다. 그는 주무숙의

인품이 고명高明하고 담백하며

'가슴에 품은 뜻이 비 갠 뒤에 부는 청량한

바람과 저녁 무렵 비 갠후 맑은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같다'하여 광풍제월이라 했다.

독서 공간인 제월당은 광풍제월에서

따온 말로 '맑은 마음을 기르는 집' 이라는

뜻이다. 현판에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쓴 호방한 필체가 새겨져있다.

竹外淸風耳

溪邊月照心

深林傳奭氣

喬木散輕陰

대 숲 너머 부는 바람 귀를 맑게 하고

계곡의 밝은 달은 마음을 비추네

깊은 숲에서 서늘한 기운 전해오고

높은 나무는 엷은 그늘을 드리우네

( 필자 옮김 )

 

위는 제월당에 편액으로 걸려있는

하서(河西) 김인후의 시이다. 하서는

양산보와 사돈이며 송강松江

정철의 스승이다.  소쇄원을 조성한

양산보(梁山甫:1503-1557)

면앙정 송순과 외사촌사이로 어린 나이에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선생의

문하에 들어간다.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지만,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이 가까운

화순 능주에 유배되었다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이곳에서

유림의 선비로 살았다. 양산보는 소년 시절

마을 옆 계곡에서 놀다가 물오리를

따라 지금의 소쇄원까지 올라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이곳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내 십육 대 조이신 괴정(槐亭)

(謙:1504-1565) 할아버지도 정암선생의

제자였다. 할아버지 고향이 이곳에서

가까운 보성이어서 비슷한 연배인 양산보

선생과 교분이 있었다. 정암 선생과

가까운 이들이 사화로 화를 당했는데 두 분은

어린 나이여서 화를 면했다 한다.

 

제월당에서 다리를 건너면

오곡문(五曲門) 토담 아래로 계곡물이 다섯

굽이로 흐른다. 길가 작은 연못 옆에

높게 자리한 대봉대(待鳳臺)에 앉았다.

계곡 건너편의 제월당과 광풍각을

바라보니 엣 시절을 그린 소쇄원도

(瀟灑園圖) 원림에서 할아버지가

문객들과 담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이 지은

소쇄(瀟灑)의 의미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은 보기에는 작은 공간이지만,

광풍제월의 의미가 담겨있는 큰 원림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명리에 초연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품성과 절의가 있었다.

 

몇 해 전 아내와 추석날 달구경을

하러 이곳을 찾았다. 한가위 달빛이 대숲과

어우러진 제월당은 고여하며 숙연했다.

이날 밤 양산보선생의 15대 종손을 만난

인연은 뜻 깊었다. 오백 년을 거슬러

올라 겸할아버지와 정암선생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후손들이 만난 귀한

인연에 감사했다. 나는 소쇄원을 찾을

때마다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다.

* 윤 겸 (尹謙: 1504-1565)

자는 수익(受益), 호는 괴정(槐亭),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괴정(槐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