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괴정(槐亭)마을의 회화나무

윤소천 2017. 11. 20. 20:48

 

 

전남 보성군 복내면 괴정(槐亭)마을은

칠원윤씨(漆原尹氏) 집성촌으로 나의 선조가 수백 년

터를 이루고 살아온 곳이다. 선친 생전에

자주 들르곤했던 덕암제(德菴齊)를 오랜만에 찾았는데

선친이 태어난 이곳 이정표가 유정리에서 옛 이름인

괴정(槐亭)마을로 바뀌어있었다. 가승(家乘)을 만들면서

16대선조의 아호가 *괴정(槐亭)임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그 유래를 알게 되었다. 태어난

지명을 아호로 쓴 것이다.

 

마을 어귀 회화나무가 있는 집은  집안의

대모님이 살고 있는데, 오백 년 된 나무로 임금이 벼슬을

한 우리 선조에게 하사하여 심은 나무라 한다.

이 회화나무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이 댁 이찬식 윤창숙

내외분은 우리나라 삼베명인이다. 뒤안 대숲에

대나무보다 더 높게 자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까치둥지를

 품고 서있다. 아침에 울면 기쁜 일이

저녁에 울면 슬픈 일이 생겨 동네의 길흉사를 알려주곤

하는 까치가 회화나무의  따뜻한 마음을

알았을까 두 둥지나 틀었다.

 

 회화나무는 대나무를 이기고 대나무보다

높이 서서 푸른 잎을 깃발처럼 날리고 있다.

대나무는 옆의 나무를 위협한다고 하는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와 더불어 고난을

이겨낸 삶이 자랑스럽다. 삶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내어 일어서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는가. 제 성품 그대로 당당하게 서있는

회화나무에서 선비의 모습을 본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집안 내력과 젊은

한 때 풍파를 겪은 내 삶의 옹이를 아는 선생님이 나의

모습이 회화나무를 닮았다며 회정(櫰亭)이라는

아호를 주셨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를

알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변화를 읽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다.

 

회화나무 처럼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정본청원(正本淸源)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고요히 관찰'하는만물정관(萬物靜觀)의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선생님은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셨고 나는 과분한 아호를 받았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길상목으로 심으면

좋은 기운이 들어와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문리가 트이고

사업하는 집에는 사람이 모여들어 번성한다고

했다. 내가 회화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은 푸르른 잎과

진 초록빛 가지에서 진취적인 기상을 느끼면서였다.

내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 딸은 회화나무 꽃인 회화(櫰花),

작은 딸은 열매인 회실(櫰實)이라는 아호를 주고 싶다.

 그러면 괴정(槐亭)할아버지에 이어 나는 회정(櫰亭),

회화(櫰花), 회실(櫰實)로 우리집은 회화나무 가족이 된다.

 

8월 어느 날, 황백색의 쌀알 같은 꽃이

회화나무 아래 한 뼘만 한 묘목들이  군데군데

자라있었다. 나는 이 묘목을 덕암제(德菴齊)와

마을 주변에 옮겨 심었다. 세월이 흘러 괴정할아버지

깊은 뜻이 뿌리로 내려 덕암제는 회화나무 동산이

되고, 회화나무 숲이 우거진 괴정마을에는

좋은 기운이 구름처럼 모여들기를 바란다.

 

* 괴정(槐亭) : 윤겸(尹謙)의 호(1504-1565)  자는 수익(受益),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