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꼰 대 / 윤소천

윤소천 2019. 8. 12. 09:42

 

 

규정 속도 100km인 고속도로 1차선을 80km로

마냥 달리는 차를 한참 뒤따르다 추월하게 되었다.

차선을 바꾸면서 빵떡모자를 쓴 운전자를

순간 나도 모르게 ‘에잇, 꼰대’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인데 

생소하게도 느껴져 사전을 찾아보니 '꼰대스럽다'는

‘자신의 경험만이 옳다고 주장하여

남을 가르치려 드는 데가 있다’고 쓰여 있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을 꼰대라 부른 기억이 난다.

숫기가 없던 나는 처음에는 모든 선생님을 꼰대라

부르는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을 읽고 유식한 척하며

  남을 지적하는 사람을 꼰대라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어려웠던 시대, 한 때 우리 집은

집안 대소가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 적이 있었다.

부친이 일찍 고향을 떠나와 시내 중심가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바쁜 중에도 

뒤치다꺼리를 말없이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은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자신들 앞가림도

못한 인사들이 까시롭기는 오뉴월 보리 까시레기

같다’하며 푸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신세를 지면서도 염치보다 체면을 앞세워 큰기침을

했던 그분들이 꼰대였던 것 같다.

 

요즈음 지도층이라는 이들이 지난날 명예와

권위를 내려놓지 못해 품위를 잃고 염치와 부끄러움

마저 잊어버린 것을 본다. 이는 피었다 시들어버린

영산홍이 꽃을 떨치지 못하고 가지에 그대로 매달고

있는 듯한 추한 모습이다. 잠자코 있으면 존경

받으련만 꼭 나서서 꼰대 짓을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꼰대가 있다. 자신이

꼰대인줄 알면서 꼰대짓하는 꼰대와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며 꼰대 짓하는 꼰대다. 전자는 그지없이

밉지만 후자는 딱하여 안쓰럽기조차 하다. 지난날

꼰대는 자기를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했는데,

요즈음은 가진 이들이 누리면서 갑질하고 꼰대

짓을 한다. 남은 잘도 지적하면서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

 

성숙한 삶은 절제하면서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삶이다. 얼마 전 선배 문인이 영면(永眠)하셨다.

선생은 술을 좋아했는데 흥이 나면 흘러간

옛 노래를 꺾어 넘기며 목청 높여 부르곤 하였다.

그러나 위엄이 있으면서 매사에 옳고 그름과

격을 아시어 앞에서 함부로 처신하기 어려웠다.

후배들이 실수를 하면 기억했다가 바로 지적하지

않고 적당한 때에  짚어 주곤 하였다.

 

그런 선생을 주위에서는 껄끄러워하며

'보리 까시레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내

주위에는 지적을 마다하지 않은 그만한 어른이

없어 선생이 몹시 그립다.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의연(毅然)하면서도 풀꽃처럼

자연스러워 모두를 너그럽게 감싸줄 수 있는

포근한 사람일 것이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꼰대를 넘어서 곱게 나이 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 광주수필. 2019 . 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