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처음엔 세 마리가 어미 곁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며칠 후
주먹만 한 앙증맞고 귀여운
놈들이 더 눈에 띄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니 같이 있던
다른 녀석이 어느새 또
새끼를 낳은 것이다.
마당에 그대로 놓아두고
먹이를 주는 형편이라 녀석들
식사 때나 얼굴을 모두
볼 수 있다. 녀석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새끼를
낳아 숨겨 놓았다가, 젖을 뗄
무렵이면 자랑이라도 하듯
데리고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열 마리나 되는 녀석들
뒤치다꺼리가 쉽지 않은데,
이제 한꺼번에 일곱 마리가
늘어나 고양이 대가족이
되었다.
처음 한 마리를 데려온
지가 사 년 전쯤이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 아랫마을
고모님 댁이었다. 누가 고양이
한 쌍을 차에 실어와 뒷산에
내려놓고 가버렸는데 며칠을
굶고 울어대다 가까운 인가를
찾아 내려온 고양이였다. 졸지에
산목숨을 떠맡은 고모님은
혀를 차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거두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감당하기 힘겹다 하시어
내가 수놈을 맡아온 것이다.
녀석과 첫 상면을 하였다.
갈색 목걸이에 검은 융단의
목타이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으로 하면 결혼식장에서나
보는 예복 차림이었다.
윤기가 자르르한 잿빛 바탕에
하얀 점이 적당히 박혀있는
모피, 균형 잡힌 몸매에 얼굴이
여느 고양이보다 순박한 모습
이어서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한눈에 호감이 갔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브리티시
쇼트헤어’라는 종이었다.
데려와서 비어있는 개집에
목줄을 달아 매어놓았는데 집에
들른 큰애가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아주다 녀석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는데,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더니 어느 눈 밝은 네티즌이
보고 ‘고양이가 아니라 개양
이네요.’라는 댓글을 달았다며
목줄을 풀어 주라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고양이를 매어놓은
것이 꺼림칙했던 참에
곧바로 풀어 주었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났는데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녀석이 그사이 장가를 들어
제 녀석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호랑이 줄무늬를 한
와일드하게 생긴 색시를 보란
듯이 데려왔다. ‘제 눈에
안경이지, 그래 짝 만나
장가들었구나.’ 하며 다독여
주었는데, 바로 새끼를 낳아
집을 지어 주고 먹이를 챙겨
주어야 했다. 수놈과 달리
암놈은 안방마님이 되어
자리를 잡고 줄곧 머물면서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고
귀여워서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것이 두 배 세 배를
낳아 순식간에 열 마리가 되자
뜰이 고양이 마당이 되어,
아뿔싸 무슨 대책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생각 끝에 어느 날부터
먹이를 주면서 “너희들과 한집에
살게 되어, 집도 새로 지어
줄 테지만, 네놈들 그 고약한
배설물은 감당할 수 없다.
밖에 나가 해결해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알았지.” 하면서 타일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신통하게 녀석들 질서가 서서히
잡혀가는 것 같았다. 말 알아듣는
나무 이야기는 있지만, 육식하는
녀석들에게 궁여지책으로 내린
처방인데, 어느 사이 이심전심이
되었는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노모는
‘그놈들 참, 못된 사람보다 낫다.’
하시며 모처럼 칭찬을 하였다.
그보다 다행인 것은 고양이 마당이
된 뜰을 보고 ‘저놈들이 또.’
하면서 고양이 데려온 나를
책망하는 듯한 아내에게 그나마
할 말이 생긴 것이었다.
백지 위에 집 모양을
그린 다음, 소나무 아래에
제재소에서 목재를 켜고
남은 피죽을 골라 서툰 솜씨로
고양이 집을 지었다. 어느새
새집에 들어앉은 어미 품에
새끼들이 서로 포개어 안겨있다.
꼼지락거리며 어미젖을
먹고 있는 새끼들을 보고
있으면 이 녀석들이 편하고
행복하게 보였다.
낮잠을 많이 자는 녀석들은
한낮이면 나무 그늘에 배를
드러내 놓고 누워 복잡한
세상일은 아예 잊고 산다는 듯
한껏 늘어져 낮잠을 잔다.
그러다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몸을 누인다. 잘 만큼 자고
일어나면 몸을 늘여 기지개를
켜고 몸을 부르르 떤 다음
서서히 발걸음을 떼는데, 걸음
걸이가 느릿느릿 유유자적
하고 거침이 없어 당당한
위엄이 느껴진다.
호기심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녀석들은 맛있는 먹이를
주며 불러도, 자기가 오고
싶어야 온다. 어느 날은 녀석이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바람결에 털을 스르르
날리고 있었는데, 사색하고
있는고매한 학자처럼 우아하게
보였다. 이때의 고양이의
모습이 가장 멋스러웠던
것 같다.
녀석들은 사람의 마음을
미리 알고 곧잘 읽어내는 것
같다. 영리하고 지혜
있는 녀석들인지라 제 식구들을
잘 챙겨낼 것이라 믿는다.
(한국수필 202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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