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에는 봄이면
참꽃이라 불리는 진달래가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산골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꽃이 되었다.
오늘은 이 진달래꽃을 보러 남쪽
강진 주작산을 찾아간다.
주작산朱雀山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듯해
지어진 이름이다.
주작산과 이어져있는
덕룡산德龍山은 웅장하면서
봉우리가 창끝처럼 높이
솟아있는데 동봉과 서봉 사이
에는 초원 능선이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4월은 진달래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앞서 간 차를 따라
산길을 오르는데, 어느새
고갯마루에 다다랐다. 바위
봉우리 사이사이에 피어
산 능선을 덮고 있는 진달래
꽃이, 황홀한 선경을 이루어
신세계를 펼쳐 놓았다.
고개에 올라 진달래꽃에
취해있는데 학창시절 좋아
부르곤 했던 ‘바위고개’가
생각난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나직이
불러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소월의 약산
진달래꽃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무친 정을 눈물로
노래했는데, 누구에게나
회한은 애틋한 눈물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는가 보다.
내가 다닌 고교의 교가를
작사한 한메 송규호 선생은
문학의 길에서 내게
필명을 지어 주셨다. 선생은
눈 덮인 진달래고개*에서
봄을 기다리며
'푸른 산, 푸른 바람,
바람이 불면/ 그님이
오신다는 진달래고개/
그리운 가지마다 망울이
지면/ 산새도 어서 오라
노래하리라/ 아! 웃는
얼굴 옛사랑이 저기
오시네.' 하고 노래했다.
나는 이 시詩를 읽을
때마다 선시禪詩를 읽는
느낌이 든다. 선생의
진달래고개는 혼탁한 세속에
사는 우리가 순수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됨으로서
참된 나를 찾은 고개라는
생각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소설
싯다르타는 인생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싯다르타는 사문沙門의 길에
들어 세상에 눈을 뜨면서,
허무虛無에 빠져 생을 포기하려
하는 순간, 강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뱃사공이
된다. 그리고 우주의 조화로움
속에 모든 것이 하나임을
깨닫고, 연꽃이 허공이 아닌
세속의 진흙 속에 피는 것을
본다.그리고 무상無常을
넘어서서 삶이 바로 고행이면서
수행임을 깨닫는다. 헤세가
강에서 들었던 생명의 소리는
실존에 눈을 뜬 진달래고개
였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바위고개를 지나
산마루에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면서 맑게 갠 하늘에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열려있다. 멀리 망망대해를
바라보다 눈을 돌리니 강진만
너머로 뭍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마루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다 어느새
종심從心에 이른 나를 본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니
'삶은 자유함을 향해 끝없이
나를 닦아가는 여정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진달래꽃은 소박한
시골처녀로, 잎과 함께 피며
꽃이 진한 철쭉을 화려한
궁중여인으로 비유했다. 세상이
변해가는 탓인가. 참꽃인
진달래는 귀한 꽃이 되어간다.
진달래꽃은 볼 때마다
느끼는 새로운 떨림이 있다.
진달래꽃색은 내 마음을
맑게 하면서 말갛게 씻어준다.
이 꽃은 마음을 울리는 꽃이다.
어릴 적 무등산 증심사
계곡에서 나무꾼이 나뭇단
위에 진달래꽃을 꽂아
내려오면 나비가 훨훨 꽃 따라
오던 모습이 지금도 내게
아름답게 남아있다.
진달래꽃 이야기를 했더니
해남 땅 끝 달마산 아래 사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봄이면 달마산 진달래가
장관이라며 담가 둔 두견주에
진달래꽃 따서 화전놀이를
하잔다. 내 마음은 벌써
진달래 밭에 가있다.
*진달래고개는 송규호 수필집
가랑잎사연에서
업혀 내려온 운장산 中
( 한국수필 . 2023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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