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는데 온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무등산無等山 원효계곡 아래 충효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움트던
거대한 왕버들에 춘설春雪이 쌓이고 있었다.
이 모습이 장엄莊嚴 하고 신령스러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충장공 忠壯公
김덕령 장군은 어릴 적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은
장사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문무를
갖춘 젊은 의병장으로 호남과 영남 곳곳에서
왜군을 막아내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장군의
전공을 시기한 무리가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 모함하여 29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한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을 파직하여
심한 문초를 한 선조는 김덕령장군
에게도 혹독한 국문을 했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 있거니와
내 없는 이 몸에 불이 나니 무엇으로 끌고
< 춘산곡(春山曲) / 김덕령 >
봄 산에 불이나니, 피지 못한 꽃들도
다 불 붙는다. 저 산에 일어난 불은 끌 수 있는
물이라도 있지만, 내 마음에는 연기 없는
불이 나니 끌 물조차 없구나. 이 시詩는 장군이
피 끓는 젊은 가슴으로 쓴 옥중 시이다. 이후
모든 사실이 밝혀저 누명을 벗고 충장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이때 장군이 태어난
이곳 석저촌을 충효리라 부르고 장군을 기려
왕버들 다섯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왕버들은 무등산을 바라보며 큰 바위
같은 몸통을 하고 앉아 웅크린 채 해묵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몸통에는 커다란
옹이가 져 있고, 속은 문드러진 구새 먹었다.
오백 년 제자리를 지키며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싸 안은 것일까. 이제는 새롭게 태어나
수려한 모습으로 김덕령 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이 되어 서있다. 그리고
광주光州의 중심 거리를 장군의 시호를 따
충장로라 부르게 되었다.
몸통에서 난 새순은 봄이면 연두 빛
구름처럼 피어나고, 여름이면 충장공의 이름만큼
큰 그늘을 드리운다. 거목의 정신은 고고하고
그 기상은 장대하다. 평소 초록 이끼에 덮여
고색창연하던 왕버들이 오늘은 춘설이 쌓여
무등산을 닮은 백발의 도인처럼 서있다.
이 모습이 장엄하고 숙연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죽어서 빛난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단심丹心 왕버들 푸르름같이
길이길이 빛나리라.
( 광주수필 . 2023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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