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백발의 왕버들 / 윤소천

윤소천 2023. 5. 20. 09:39

 

 

입춘 지난 어느 날, 온종일 함박눈이 내리는데

나는 무등산(無等山) 자락 충효마을 앞을 지나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왕버들은 어느새 연둣빛 움을 틔우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여기에 춘설이 내려 왕버들 가지에 흠뻑 쌓였는데

이 모습이 장엄(莊嚴)하고 신령스러워 그 앞을 그저

지나기가 쉽지 않게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무등산 정기를 받고 자란 김덕령 장군은 어릴 적부터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 잡은 장사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문무를 갖춘 젊은 의병장으로 호남과 영남

곳곳에서 왜군을 격파해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그런데 장군의 전공을 시기한 무리들이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하여 신하들의 간곡한 상소에도

불구하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절한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을 파직하여 옥에 가두고 심한 문초를 한 의심과

시기가 많았던 어리석은 선조로부터

혹독한 국문을 당한 것이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 있거니와

내 없는 이 몸에 불이 나니 무엇으로 끌고

< 춘산곡(春山曲) / 김덕령 >

 

봄철 산에 불이나니, 피지 못한 꽃들도 다 불 붙는다.

저 산에 일어난 불은 끌 수 있는 물이라도 있지만, 내 마음 속에

연기도 없는 불이 나니 끌 물조차 없구나. 억울했던 장군이 피 끓는

젊은 가슴으로 옥중에서 남긴 시이다. 이후 누명이 벗겨지면서

장군에게 충장공(忠壯公)이란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때부터 장군이 태어난 이곳 석저촌을 충효리라 부르고

장군을 기려 왕버들 다섯 그루를 심었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큰 바위 같은 몸통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왕버들의 묵은 가지는 바닥을 기듯 늘어져있다.

장군의 못다 이룬 한(恨) 인양 몸통에는 커다란 옹이가 지고

속은 장군의 억울함과 아픔에 썩어 문드러진 듯 텅 비어있다.

사백 칠십여 년 제자리를 지키며 이제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한 것일까. 새롭게 태어난 수려한 모습으로

김덕령 나무라는 이름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서있다.

 

텅 빈 몸통에서 난 새순은 연두 빛 구름처럼 뭉게뭉게

사랑으로 피어나고, 여름이면 충장공(忠壯公)의 이름만큼

큰 그늘을 드리워 공덕을 베푼다. 거목의 기상은

장대하고 정신은 더욱 고고하다. 평소에는 초록 이끼에

덮여 고색창연 하던 왕버들이 오늘은 춘설이 쌓여

무등(無等)을 닮은 백발의 도인처럼 서있다. 이 모습이

숭고하면서 숙연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죽어서 빛난 불멸(不滅)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

장군의 단심(丹心) 더욱 붉어

왕버들 푸르름처럼 길이길이 빛나리라.

 

( 광주수필 . 2023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