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매실을 따며 / 윤소천

윤소천 2016. 6. 30. 08:48

 

     

눈 속에서 꽃샘추위를 이기고 마침내

꽃 문을 틔운 매화를 보았을 때 신비롭기만 했다.

매화가 한창일 무렵에 매화 밭에 자주

가보았다. 꽃그늘에 앉아 매향에 취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꽃 가까이 다가가면

나도 모르게 그 매서운추위를 이겨내고 너

대단하기도 하구나.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가지마다 무성한 잎 사이로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살이 오른 청록색 매실에서는

싱싱함이 넘쳐나 빛이 난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알알이 맺혀있는 모습이

마치 연둣빛 보석 같다.

 

수확철인 요즈음 아내와 함께 햇볕이

따가운 한낮을 피해 해거름에 매실을 딴다.

아래 가지부터 손이 닿는 가지는 휘어잡아

똑똑 따내고, 손이 가지않은 윗가지는

대나무 장대로 탁탁 쳐대고, 가지 사이로

장대를 넣어 위 아래로 좌우로 툭툭

쳐서 털어낸다.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매실이

바구니에 한 알 한 알 주워 담고 있는 아내의

등허리로 떨어진다. 풀숲에서 잡초를

헤치며 매실을 줍던 아내가 손바닥에 매실을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초록빛 보석

같아요.'하며 밝게 웃는다.

 

 산뜻함이 느껴지는 매실의 향긋한

향은 오래 맡아도 싫지가 않다. 잘 익어

붉은 빛이 나는 홍옥 같은 매실에서는

 새콤하며 달콤한 향이 난다. 매실 털기가

끝나고 바닥에 떨어진 매실을 주워

담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직장을 사직하고

방황하며 한동안 겉돌던 나였는데,

말없이 참아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헤프게

보낸 시간 들이 아깝기만 했다.

 

매실을 거두어 돌아오는 저녁

어스름이다. 이럴 때면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일을 마치며 느끼는 

보람은 노동의 신성한 대가이다. 여행의

맛을 알아 여행 계획을 짜는 재미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 갑갑한 세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여행을 끝내고 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그러던 내가 철이 들어가는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일이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작든 크든 주어진 일과에 충실하고

가족과 그 누구를 위한 일이라면 

보람있는 일이다. 매실 향이 가득한

거실에서 매실을 다듬는 노모와 아내의

 모습이 화목해 보인다.

 

( 광주문학. 2016.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