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우리 ‘다리’ / 윤소천

윤소천 2016. 7. 13. 07:42

     

 

아침이면 마을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산책 한다. 겨울로 접어들어서는

햇볕이 있는 오후에 집을 나선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쉼터 참나무숲에

들어서면 우리 ‘다리’가

떠오른다. ‘다리’는 십여 년을 함께

지낸 우리 개의 이름이다.

 

둘째 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나들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집에 들렀는데,

아이는 애완견을 보자 예쁘다며 쓰다듬고

안아주더니 어느새 친해져서 장난하며 놀았다.

그리고는 집에 데려가자고 떼를 썼다.

 

그 후 한동안이 지났는데, 친구네가 어미가

새끼를 낳았다며 강아지 한 마리를 ‘다리’라는 이름을

지어 보내왔다. 친구 부인은 아내와도 친구여서

우리는 안팎으로 친구 사이였다. 잘생긴 제 어미를

빼닮은 귀여운 갈색 ‘푸들’로 아이는 강아지를

덥석 안으며 좋아했다.

 

그때 우리는 오래된 고택에 살고 있었는데

옛 한옥은 방들이 좁고 요즈음 집과 달리 겨울이면

웃풍이 심해 겨울나기가 힘들었다. 여기에

녀석의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되어 고역이었다.

어렵게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왔다.

‘강아지는 흙이 있는 마당에서 지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단다’ 하며 아이를 달래어 담장 밑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옮겨 집을 마련해 주었다.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별일 없이

자라서 얼마 후에는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대며 집을 지켰다.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 하면서 잔디

마당 한쪽에 넓은 새집을 마련해 주었는데

‘다리’는 아주 좋아했다. 아이가 마당에서

공을 가지고 놀면, 한데 어우러져 쫓아다니며

잔디 위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뒹굴면서 신이 났다.

 

마당의 잔디는 해마다 두세 차례 깎아

주는데 베어낸 풀을 두엄더미에 버렸다. 그러다

문득 건초를 만들어 ‘다리’ 집에 깔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을 말려 자루에

담아 두었다가, 날이 추워지면 깔아주고

눅눅해지면 갈아주었다. 그러던 이듬해 건강하던

녀석이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살펴보니 몸에 팥알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놀라 병원에 데려갔는데 살갗에 붙어

기생하는 진드기였다. 겨울을 지내고 나면

건초를 걷어내 봄에 태워야 하는데

깜박한 것이었다. 목욕을 시키고 치료했는

데도 얼마 안 되어 자는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렸다.

 

딸들이 진학 하면서 ‘다리’와 헤어지고

그동안 나를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다리’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팠다. 딸의 울먹이는 전화 목소리를

뒤로하고, 한지를 깐 종이상자에 ‘다리’와

마당에 핀 꽃을 꺾어 넣고 함께

산책하던 쉼터 옆 나무 밑에 묻었다.

 

‘다리’와 함께 봄이면 고사리를 꺾고,

여름이면 계곡에서 애들과 물장구치고,

가을에는 밤을 주우러 갔던 추억들이

사진 앨범을 넘기듯 한 장면 한 장면

지나갔다. 녀석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짝을 맞추어주려 했는데 그때마다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리’는 먹이를

탐해 욕심부리는 일 없었고,

지혜가 있어 먼저 알아보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짖지 않았다.

 

이런 ‘다리’를 생각할 때면 천성이

천진하고 선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리’를 보낸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지금도 산책길 쉼터에 이르면 ‘다리’가

먼저 생각난다.

 

(무등수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