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단 가장자리,
소나무와 능수단풍 사이에 어린이
키만 한 솟대가 서 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새를 머리에
인 솟대가 나를 먼저 반겨주는데,
집 마당에 솟대가 들어서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집을 신축하면서 산 아랫
마을이어서 화목보일러와 기름
보일러를 함께 설치했는데,
난방은 화목으로 하고 더운 물을
쓸 때는 기름보일러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산림 가꾸기 사업
으로 벌목과 가지치기한 나무가
지천이지만 옮기는 일이
힘들어서 땔감이 눈앞에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아파트단지에 땔감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연락해 왔다.
가 보았더니 가지치기를 한
잡목들 틈에 전봇대 만한
소나무 기둥이 십여 개나
있었다. 들여다보니 정교하게
다듬은 새를 머리에 인 솟대다.
고층 아파트 정원 가장자리에
서 있던 솟대가 낡아서
철거해 놓은 것이었다.
이십층 고층 아파트 숲에
이삼층 높이로 솟대를 세운 발상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동안 이 단지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솟대였다. 그런데 수명이
다했다 해서 잘라 아궁이에 넣을
생각을 하니 왠지 꺼림직했다.
생각 끝에 제일 실한 하나를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 화목으로 쓰기로
했는데 문제는 남긴 그 솟대를
옮기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마을 어귀에
돌무더기를 만들어 세워야겠다고
했는데, 크고 무거워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끝에 옮기고
관리하기 쉽게 가슴 높이로 잘라
집 마당에 세우기로 했다. 그리하여
키 작은 솟대가 화단 가장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솟대 밑동에 동백기름을 발라
비닐로 싸매어 묻고, 지주목을
세우니 당분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솟대 앞에
철쭉을 옮겨 심고 주위의 나무를
다듬어 매무새를 갖추니 기러기
같기도 하고 솔개 같기도 한 새가
기세있게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밤사이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본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머리에 이고 나무와 함께
서 있는 솟대의 모습이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가슴만 남아있는 키작은 솟대지만,
낮에는 새들과 친구가 되고
밤이면 별들에게 내 꿈을
전해줄 것 같다.
( 한국수필. 20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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