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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근이 / 송규호

밍근이는 오늘도 싱긋 웃는다. 짚뭇을 한 아름 안고 싱긋 웃으면서 창호네 돌담길을 돌아간다. 여든이 넘도록 장가 한번 가보지 못한 그에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거리라고는 없다. 두툼한 입술 위에 다갈색 수염 몇 개를 늘어세우고 다니는 그의 베잠방이 허리띠에는 언제나 곰방대가 매달려있다. 똥똥하여 힘깨나 있어 보이지만 워낙 꽤가 없어, 씨름 손만 잡으면 누울 자리부터 보고 주저앉은 밍근이다. 일생을 남의 집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는 돈도 법도 소용이 없다. 하물며 명예나 지위 같은 것이 그의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손길이 야물지 못한 탓으로 가끔 소박 아닌 구박을 맞아도 투덜거리거나 옹알거리는 일이 없이 싱긋 웃으며 돌아서는 천성이다. “밍근이, 돼지는 왜 죽어?” “간 끄네 묵어놓고..

내 고향 / 윤오영

양근楊根 연양리延陽里는 내가 어려서 살던 고양이다. 해외에 나가 화려한 문명, 풍족한 도시에 살면서도 잊히지 않고 그리운 것은 황폐하나마 고국의 산천이라고 한다. 내 고향의 산천이 이다지 그리운 것도 반드시 산이 삼각산보다 웅장하고 물이 한강수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오직 정 깊었던 탓이다. 길건 짧건 기쁘나 슬프나 인생 백년은 하나의 여정旅程. 나그네의 향수는 물리칠 길이 없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옛터에서 일생을 보내도 향수는 느끼려니, 동심을 키워준 고향이라 어찌 아쉽고 그립지 아니하랴. 나는 현실이 괴로울 때면 내가 왜 이 나라에 태어났던가. 남과 같이 외국에나 태어났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아니 하였으련만, 이 나라에 태어 난 것을 원망하고 미워도 해 본다. 차라리 국적을 바꾸고 외국에 귀화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