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과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면,
꿈결처럼 아득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 오고는 한다.
서리맞아 희끗한 머리카락,
어느새 반생을 훌쩍 넘어
종심從心에 서 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절.
무지와 오욕의 늪을 헤매던 여름
골짜기, 어두운 밤길 별빛만
바라보고 숨이 턱에 차 걷던
고갯길들. 늦가을 무서리에
자지러진 산마루는 바람마저
드세었다. 그리고 한겨울 눈
내리고 내려, 잠속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먼 길 돌아와, 이제 봄이
오는 길목의 바람 잔 들길.
자연에 몸을 맡기고
침묵의 겨울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개안開眼한 내가
봄의 길목에 서 있다.
내 책상 위에는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
기도드리는 노인의 그림이
놓여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일어
경건해진다. 행복하려면
감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 감사를 알면서
철이 드는 것 같다.
내게 필명을 주시어
늦게나마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해 준 한메 선생님,
글눈을 틔워주시고 수필을
알게해 준 서전瑞田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사랑과 인내로 묵묵히 지켜
보아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감사하며, 부모님과 나를
애지중지 길러주신 할머니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친다.
실존의 AI 시대, 우리는
길 없는 길 위에 서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정행검덕
精行儉德의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2024. 가을에 윤소천
'소천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윤소천 (0) | 2024.11.23 |
---|---|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무등산(無等山) / 윤소천 (0) | 2024.11.02 |
겨울 이야기 / 윤소천 (2) | 2024.10.24 |
수선화 水仙花 / 윤소천 (2) | 2024.10.04 |
인생 수업료 / 윤소천 (2) | 202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