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나팔꽃 / 나태주

윤소천 2023. 8. 20. 13:45

 

 

 

 

담벼락 

가파른 절벽을 

벌벌 떨며 기어올라간

나팔꽃의 덩굴손이 

꽃을 피웠다 

눈부시다 

성스럽다

나팔꽃은

하루 한나절을 피었다가 

꼬질꼬질 배틀려 떨어지는 꽃 

저녁 때 시들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아침 자취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빈 자리 

그 어떤 덩굴손이나 이파리도 

비껴서 갔다 

나팔꽃 진 자리 

더욱 눈부시다 

성스럽다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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