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근교 마을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들리는 소리가 풀벌레 우는소리와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닭
울음소리였다. 처음에는 소란스레 들렸지만,
이제는 정겨운 소리가 되었다. 여명이
트이면 멀리 가까이에서 수탉들이 홰를
치며 청아한 목소리로 꼬~끼오꼬
하며 새벽을 연다.
선조들은 새벽닭이 울면 잡귀가
사라진다 하여, 제사를 지낼 때 닭 우는
소리를 기준으로 했다. 주역에서는
닭을 상서로운 동물이라 한다. 고대
그리이스에서는 수탉을 악마를 물리치는
수호신으로, 프랑스에서는 닭을 정의
용기 평등을 상징하는 국조(國鳥)로
삼았다. 프랑스 화폐에는 자부심의
표상으로 수탉문양이 새겨져있다.
예부터 닭은 오덕(五德)을 지녔다 했다.
닭의 볏은 문(文)으로 벼슬을 나타내고,
날카로운 발톱은 무(武)이며, 용(勇)은 적을
만나면 온힘을 다해 싸우는 기백, 먹이가
생기면 서로 불러 나눠 먹는 인(仁), 밤을
지키며 때를 알아 새벽을 알리니
신(信)이라 했다.
닭 울음소리가 좋아 마당 한 편에 닭을
기르기 시작한지 십여 년이 되었다. 처음 수탉
한 마리에 암탉 너 댓 마리를 기르기 시작
했는데, 녀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서
애를 먹었다. 초저녁이나 한 밤중에 울면
불길하다는옛말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토종닭을 기르고 부터는 새벽 제 때에 울어
우리 닭이 울면 동네 닭들이 따라 울었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닭들이 먼저 알고
'꼬꼬댁'하며 반긴다. 모이 바가지를 들고
닭장 안으로 들어가면 닭들이 발밑으로
쪼르르 몰려온다. 모이를 줄듯하다가
멈추고 뒷걸음질 치면 닭들은 목을 빼고
몸을 흔들면서 쫓아오는데, 이 모습이
귀엽다. 수탉은 여러 암탉을 거느리고
사는데, 암탉들은 질투가 심해 새로운
암탉이 들어오면 시샘하여 쪼아대 쫓아
내고야 만다. 그래서 예부터 '다가도 닭
손님은 못 간다.'하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검푸른 청(靑)빛이 도는 우리 수탉은
맨드라미꽃 같은 새빨간 벼슬을 하고 있다.
수탉이 울 때는 윤이 나는 푸른 꽁지깃을
바짝 세우고, 턱 볏을 늘어뜨린채 목덜미
털을 부풀리면서 목을 길게 빼고 온몸으로
나팔 불 듯 힘껏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는
날개를 털면서 암탉들 앞에서 호기를
부리고 위용을 과시하며 뽑낸다. 숫기없는
나는 이런 수탉의 기상이 부러웠다.
닭 울음소리는 아스라이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더 좋다. 한가한 대낮에 우는 수탉
울음소리와 졸음이 몰려오는 오후
암탉이 알을 낳고 목청을 높여 '꼬꼬댁 꼭,
꼬꼬댁 꼭' 우는 소리도 들을 만하다.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닭 울음소리가 있다.
여행 중에 필리핀 해변 숙소에서 들었던
새벽 닭 울음소리와 중국 계림 상공산(相公山)
오르는 길에서 아련하게 들었던
낮닭 울음소리다.
서산대사는 전주지방 어느 고을을
지나다 낮닭 울음소리를 듣고, 세월 속에
육신은 병들고 늙어 한 줌 흙이 되지만,
마음은 젊음도 늙음도 죽음도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머리는 백발
이나 마음은 백발이 아니다 / 지금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장부로서 할 일을
깨달았다 / 홀연히 나를 보니 온갖 것이
나 아님이 없다”*는 오도송을 남겼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새벽닭이 울자 예수님
말씀이 떠올라 슬피 울었다. 베드로에게
새벽닭 울음소리는 영혼을 깨우는 소리였을
것이다. 유럽의 성당 종탑 위에 서 있는
닭은 '베드로의 회개'를 뜻한다고 한다.
나는 나의 글이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였으면 한다.
* 서산대사의 오도송 過鳳城聞午鷄.
봉성을 지나다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中에서
( 월간문학. 2021 .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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