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 건너에 이삼년 전부터
연못이 생겼다. 산 아래 천 여 평의 논에
물을 대어 백련을 심은 연못인데,
백학이 내려앉은 듯 무리지어 핀 하얀
연꽃속에 무릉도원에서 날아온 복사꽃 같은
붉은 연이 예 일곱 송이
듬성듬성 피어있다.
연못가에는 작은 황토집이 있고
의자가 놓여있는데 들릴 때마다 집주인은
못 만났다. 주인이 백련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이곳을 주무숙의 정원이라
부른다. 의자에 앉아 연꽃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중국 북송(北宋)시대
주무숙(周茂叔)이 된 듯 그의
애련설(愛蓮說)이 떠올랐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출렁이는 물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고, 줄기 속은 비어있으나
곧아 덩굴이나 가지를 치지 아니하고, 꼿꼿하고
정결하게 서서 맑은 향기를 멀리까지
풍기고,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다”는
연꽃을 사랑하는 주무숙의 애련설 일부이다.
온밤을 지새워 물에서 줄기를 새워
솟아난 백련송이는, 단아하며 서기가 있고
반쯤 피어난 꽃은 함초롬하여 공손하고
우아하다. 그 큰 꽃송이, 고고하게 활짝 핀 연꽃은
모든 것을 내어놓은 듯 너그러우면서 자애롭다.
온종일 곧게 서서 해를 바라보는 연꽃은 저녁이
되면 꽃을 여미고 밤을 맞는다. 달밤의 연못은
고요히 사색에 잠긴듯 정적이 흐른다.
비 오는 날 연잎에 호득이는 빗소리를
듣는 맛이 일품이다. 연은 물에서 자라지만 연잎은
물 한 방울 젖지 않고 흔적 없이 또르르 털어내
버린다. 연꽃은 비 내리면 꽃을 오므렸다 비가 그치면
청량한 바람에 하늘거리며 부끄럼없는 맑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활짝 피어난다. 연꽃과 연잎의
줄기에는 작은 가시가 있는데 이는 보이지
않은 군자의 위엄인가.
아침 연못에 들리면 연들도 나를
반기는 듯하다. 나는 연의 반기는 표정에서
세상 속에 살면서 악에 물들지 않는 법을
배운다. 가지를 치지 않아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 마음, 줄기가 비어 사심 없는 마음,
비 오는 날 연잎이 물을 털어내듯 욕심 없는
마음을 배운다.
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의 맑은 향이
멀리 퍼진다는 말이다. 이는 인품이 높고 품격
있는 사람의 덕이 멀리까지 전해진다는 뜻이다.
이런 연의 마음으로 산다면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 2016. 한국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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