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수필

주무숙(周茂叔)의 정원 / 윤소천

윤소천 2021. 8. 13. 20:20

 

 

 담양 창평 우리 동네에 이삼년 전부터 연방죽이 생겼다. 

산 아래 천 여 평의 논에 물을 대어 만든 백련못인데, 백학이 내려앉은 

듯 무리 져 핀 하얀 연꽃 속에 무릉도원에서 날아온 복사꽃 같은 붉은

 연이 예 일곱 송이 듬성듬성 피어있다. 연못가에는 작은 황토집이 있고 의자가

 놓여있는데 들릴 때마다 집주인은 못 만났다. 주인이 백련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이곳을 주무숙의 정원이라 부른다. 의자에 앉아 연꽃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중국 북송(北宋)시대 주무숙(周茂叔)이 된 듯 

애련설(愛蓮說)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오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 속은 비어있으나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를 뻗지 않고, 향기는 멀리까지 맑으며, 우뚝하고 조촐히 

서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다가가 만질 수는 없다” 

 애련설의 일부이다.  

 

온밤을 지새워 물에서 줄기를 새워 솟아난 백련송이는

 서기롭고 정결하며 반쯤 피어난 꽃은 공손하고 우아하다. 그 큰 꽃송이, 

고고하게 활짝 핀 연꽃은 모든 것을 내어놓은 듯 너그러우면서 자비롭다. 

하루 종일 곧게 서 해를 바라보는 연꽃은 저녁이 되면 꽃을 여미고

 밤을 맞는다. 달밤의 연못은 고요하면서 정적이 흐른다. 

비 오는 날 연잎에 호득이는 빗소리를 듣는 맛이 일품이다. 연은 물에서

자라지만 연잎은 물 한 방울 받지 않고 흔적 없이 또르르 털어내 버린다.

 연꽃은 비 내리면 꽃을 오므렸다 비가 그치면 청량한 바람에 

하늘거리며 맑은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핀다. 연꽃과 연잎의

줄기에는 작은 가시가 있는데 이는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군자의 위엄이라 할까.

 

아침 연못에 들리면 연들도 나를 반기는 듯하다. 나는 연의 반기는

 표정에서 세상 속에 살면서 악에 물들지 않는 법을 배운다. 가지 치지 않아 

패거리를 짓지 않는 마음을, 줄기가 비어 사심 없는 마음을, 비 오는 날

 연잎이 물을 털어낸 욕심 없는 마음을 배운다. 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의

 맑은 향이 멀리 퍼진다는 말인데, 이는 인품이 고결하고 품위 있는 청결한 

사람의 덕이 멀리까지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연의 마음으로 산다면 

부끄러움 없는 군자의 삶이 되지 않겠는가.

 

     ( 2016. 한국수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