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사는 문우가 서해
구시포에 주꾸미 철이 왔다며
초대했다. 동호 명사십리
해변을 따라 구시포 가는
시오리길에 해당화가
한창이었다. 바닷가 솔밭
사이에는 진분홍 꽃잎에 노란
수술의 해당화가 피었고,
군데군데 하얀 해당화가 찔레꽃
보다 더 함초롬하게 피어있었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해당화가
있었는데 장미 같으면서 찔레도
아닌 것이 온몸에 가시가 덮여
있어 쉽게 꺾지 못했던 꽃이다.
오랜만에 동네 누이를 본 듯
반가웠다.
그 후 나는 가끔 동호 해변을
찾았는데 이날은 사리 때가 되어
나갔던 바닷물이 세차게
들어오고 있었다. 철석철석 쏴아쏴아
흰 포말을 일으키며 오늘 바다
이야기를 해당화에게 들려주려는 듯
바쁘게 들어오고 있었다. 해당화도
바다를 향해 어서 오라 손짓 하는 듯
바람결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 바람에 꽃핀 자리마다
얘기 사과만 한 열매가 토실토실
영글었다. 지난 가을에는
빨간 석류 빛에 단단한 씨를
품은 해당화 열매로 술을 담갔다.
매괴주(玫瑰酒)라 하는 이 술의
맛과 향은 표현할 수 없이 신묘하다.
완숙한 여인의 향기라 할까.
고상하며 깊다. 이 매괴주를 마시면
신기하게 가슴이 트이며
편안해진다.
중국의 두보(杜甫)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랐는데
어머니 최씨(崔氏)의 이름이
해당(海棠)이었다. 어린 두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 메이곤
하였는데 해당화를 보면
어머니를 본 듯하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목마름이
시심(詩心)을 일깨웠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빛나듯 이런
동경(憧憬)이 두보를 시성(詩聖)이
되게 했을 것이다.
얼마 전 문학회에서
청와대를 방문하고 경복궁 안에
왕의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칠궁(七宮)을 보고
나오는데, 대문 밖에 홀로 서 있는
해당화가 눈에 띄었다.
왕의 총애를 받아 왕자를 낳았지만
칠궁에 들어가지 못한 여인의
넋이었을까. 대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처연한 여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해당화의 꽃말은 온화이며
‘잠자는 꽃’이라 하여 수화(睡花)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설화가 있는데
중국 당나라 현종이 함께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던 양귀비를 깨우자
‘해당화 잠이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
한 양귀비의 재기있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다.
나는 해당화를 볼 때마다 동요
‘섬집 아기’가 떠오른다. 바다 속의
산호와 소라를 줍던 섬 아기가
초록 치마에 해당화 빛 분홍 저고리를
입은 새색시가 되어 어릴 적 놀던
그 바닷가를 그리워하며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바닷가 모래밭에
야생화로 태어난 해당화의 모습이
애잔하다. 그 향은 순박하며
은은하고 깊다. 해당화는 한 번만
보아도 맑고 소박한 모습이
오래 남는다.
( 2020. 광주문협 올해의 작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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