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어느 날,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음악 감상실 베에토벤에 들렀다가
평소 뵙고 싶었던 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 자리가 길어져 폭설로 길이 막혀,
십리 벚나무길로 유명한 스님 거처를
내차로 가게 되었다. 이 인연으로 다시 산사를
찾았는데, 차를 마시면서 스님은 엽서
크기 만 한 화선지에 주묵(朱墨)으로 선어(禪語)
몇 장을 써 주었다.
이 무렵 나는 갈대와 억새가 흐드러진
영산강 변을 자주 찾곤 하였는데, 무심히
흐르는 겨울강에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평안을 느껴서였다. 이날도 강변에
차를 대고 갈대밭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를 얻고,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는 스님이 써준 화엄경의 선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내가 꽃이었다면
무슨 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세월만 축낸
삶이었는데 버릴 꽃인들 있었겠는가?'하는
나의 자조(自照)에 위로의 말이었을 것이다.
함께 있던 선생님은 '자네는 무화과 같은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무화과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익어야 마음의 평안을 찾고 비로소 남을 배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이 나를 부담없이
편하게 느껴야 무화과와 같은 사람이라 했다.
이때 나는 외방 선교 사제로 한국에 와
오십 여 년 동안 소임을 다하고 선종 하신
신부님을 생각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벽안(碧眼)의 신부는 은퇴 사제로 내가
사는 창평 공소(公所)*에 와 십 년을 계셨다.
나는 그분의 행동으로 묵묵히 실천하는
믿음에서 잘 익은 무화과 같은
깊은 덕행(德行)을 보았다.
숨어 피는 무화과꽃은 은자(隱者)의
모습이다. 맨 가지에 젖꼭지 모양의 열매를
맺는 무화과는 분홍 빛 꽃에 흰 수술이
암수 한 그루로 좀벌이 꽃가루를 묻혀
수정하는데, 안에서 꽃과 열매가 하나 되어
익는다. 이는 마치 승僧과 속俗 그리고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의 근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손바닥 모양의 무화과 잎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을
느껴 가렸던 인류 최초의 의상이다.
무화과는 향기 풍겨 벌 나비를 부르지 않고,
화려한 열매로 주위를 현혹하지 않는다.
어린애 주먹만 한 작은 돌멩이 같은
열매가 익으면 단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이 맛이 꿀보다 더 달고 시원하다.
나는 평소 이해관계 없이 남의
일에 나서서 욱한 성정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은 '판사도
변호사도, 교통순경도 아니면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라.' 했다. 덧없는 인생사에 옳고
그름을 가리다 손해 본 적이 몇 번 이었던가.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지켜볼
줄 아는 인내가 삶의 큰 지혜임을 깨달았다.
무화과는 나를 내려놓고 소박하고
성실하게 들꽃과 같이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볼품은 없지만 잘 익어 맛이
든 무화과처럼 이물 없이 편한 그런
사람이고 싶다.
( 2018. 한국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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