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과수원에서
흰 눈이 소금같이 뿌려진
폐(肺)의 공동(空洞)처럼 뻥 뚫린 구덩이 옆에
한 그루 매화의 굵고 검은 가지가
승리의 V자를 지었고
그 언저리를 부활의 화관인 듯
꽃이 만발하다.
"보라! 나의 안에 생명을 둔 자
죽어도 죽지 않으리니
보이지 않는 실체를
너희는 의심치 말라"
까치가 한 마리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해롱대며 날아다닌다.
폐(肺)의 공동(空洞)처럼 뻥 뚫린 구덩이 옆에
한 그루 아름드리 사과나무가
송장처럼 뻐드러져 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사내가
지게를 지고 와서
도끼로 마른 가지를 쳐내고
몸뚱이를 패서 지고 간다.
"보라! 형벌의 불 아궁 속으로 던져질
망자의 몰골을,
그러므로 너희는 현존의 뿌리를
병들지 않도록 삼가라"
얼어붙은 하늘에 까마귀가
까옥까옥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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