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자화상 / 유안진

윤소천 2017. 11. 26. 20:22

 

 

 

 

한 오십년 살고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뒷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처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 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 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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