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서귀(西歸)를 뜨며 / 황동규

윤소천 2014. 5. 2. 10:20

 

 


실비 속에 두루마리 수천 개 풀려 굴러오듯 밀려오는 저 물결

바람 넘어와 흩어지며 일렁이는 저 소리.

벼랑 끝에 한 줄로 매달려 턱걸이하고 있는 섬쥐똥나무들

멋지게 휘는 해안도로에 뛰어들진 못하고

얼굴만 내밀고 있다.

채 정돈 안 된 도시. 그래 더 정다운 서귀포 떠나

태평양 끼고 남원 가는 길.

물결소리 마음대로 들락거리게 창 열고 천천히 달리며

길 금세 끝나지 않기를 빌며

후둑이는 빗방울 목덜미에 맞는 마음 어둡지 않다.

다시 올 때는 차도 유리창도 목덜미도 없이 물결로 오리.

태평양 벗어나 지귀도에서

속 쓰린 물새들과 한뎃잠 한번 자고

말 목 곡선으로 멋지게 휘는 해안도로에 오르기 전

평생 턱걸이로 매달려 있는 나무 엉덩이들을

한번씩 힘껏 떠밀어주리.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는 나무들.

머리 타고 넘어 가라?

타고 넘긴!

머리들 사이로 머리 하나 더 끼운다.

해안도로에 젖은 사람 하나 가고 있다.

서귀에 왔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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