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호랑지빠귀 / 도종환

윤소천 2014. 5. 1. 08:31

 

 

 

 

기교를 버리면 새소리도 빗줄기를 수평으로 가른다

깊은 밤 무덤가 또는 잔비 내리는

새벽 숲 초입에서 우는 호랑지빠귀

사방이 단순해지고 단순해져

오온이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때

새는 노래도 버리고 울음도 버려 더욱 청아해진다

한숨에 날을 세워 길게 던지는 소리인 듯도 하고

몸의 것들을 다 버린 소리의 영혼인 것도 같은

호랑지빠귀 소리는

단순해지면 얼마나 서늘해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금관악기 소리보다 흙피리 소리가 왜

하늘과 땅의 소리를 더 잘 담아내는지 가르쳐준다

깊은 밤 어둠을 가르고 미명의 비안개를 자르고

그 속에서 둘이 아니고 하나인

정과 동을 거느리는 소리

기교를 버려 단순해진 소리가 왜

가장 맑은 소리인지 들려주는

호랑지빠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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