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봄 나무가 보여 주는 풍경 / 도종환

윤소천 2014. 4. 18. 04:17

 

 

 

 

 폭설에 부러진 겨울나무 가지 곁에 새 움이 돋는다.

겨우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안 쪼글쪼글 오그라진 산수유

열매들을 매단 채 노오란 산수유꽃이 피어난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가 엉성해 보이던 벤자민 나무에도 연두빛 새잎이 다시 돋는다. 

말없이 봄을 만들어 가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사람들 같으면

모진 시간들을 견뎌오며 엄살이 많았을 것이다. 자책도 많았을 것이다.

때론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내가 무능력해서 가지를 부러뜨렸을

것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벌판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열매도 거두어 주는 이도

 없는 쓸쓸한 골짜기에 태어나게 한 어버이를 원망하기도 했으리라.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나무로 자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꽃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향기가 멀리가지 않았다고, 열매와 결실이 더

풍성하지 않았다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꽃나무들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자신을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자기 자신 이상으로

과대포장하거나 확대 해석하려 하지도 않고 나무들은 말없이 또 새잎을

내고 조용히 꽃을 피운다. 억지로 자신의 가치를 풍성하게 보이려고

공연한 수고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게 둔다.

 

 몇십 년 몇백 년 동안 한 곳을 지켜오면서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쉴 곳과 기댈 곳을 마련해 주고 있는 팽나무. 느티나무는

제 가지들을 자연스럽게 자라게 놓아둔 나무들이다. 작은 일로

소란을 떨지 않고,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지 않고, 자기의

가지들이 편하게 자라도록 놓아준 나무들이다. 그 가지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큰 나무가 되도록 지켜보아 준 나무들이다.

 

 덕이 있는 나무들이다. 집착과 집념을 구분할 줄 알았고,

겸손하되 자학하거나 자책하는 일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려고 무리한 짓을 하기보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바람도 이해하고 빗발도 받아들일 줄 알며 눈보라에도 자신을

지킬 줄 알았을 것이다. 뿌리를 굳건히 하되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가지를 그처럼 풍성하게 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어떤 잎은 벌레가 먹고 어떤 잎은 병들어 일찍 떨어지고

그것까지 품어 안을 줄 알며 가을 뒤에는 봄이 꼭 온다는 것을 믿고 가벼이

 처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봄에는 그런 나무들이 보여 주는 의미 깊은

풍경이 산천 곳곳에 숨어 있다. 심안으로 보면 그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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