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안동 톳제비 / 권정생

윤소천 2014. 3. 11. 06:05

 

 

 

 안동 톳제비는 익살맞은 장난꾸러기여서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놀이 친구처럼 정이 간다. 일본의 도깨비는 그 모양부터

사납고 흉하며 인간들에게 약탈과 살인까지 범하는 악귀인

데 비해 우리의 톳제비는 너무도 착하다. 술 취한 남자가 밤새도록

톳제비와 씨름을 하다 날이 센 뒤에 보니 버려진 디딜방아나

헌 빗자루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서로 몸을 비비며

사용해 빗자루나 디딜방아 같은 연장을 불에 태워 없애지

않는다. 그것들은 비록 나무토막이나 수수 대궁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오랜 세월 수고해 준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영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신神이 되듯이, 사람을 위해 수고해 준

연장도 그 수명이 다하면 차이는 두지만 역시 신으로 인정해 준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가 너무도 고맙다. 그래서 톳제비는 죽은

뒤엔 더욱 자유로운 몸으로 우리의 이웃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방의 도깨비는 어떤지 자세히 모르지만 안동 톳제비는

 모두 무일푼의 가난뱅이다. 부자방망이도 없고 알라딘의 등잔 같은

초능력도 없다. 기껏해야 술 취한 남정네를 끌고 다니며

가시밭에서는“여긴 물이니까 바지 벗으라.”하고 물에서는

“여긴 가시밭이니 바지 입으라.” 하면서 골탕을 먹인다. 그러나

 절대 죽이거나 먼 곳에까지 데리고 가지 않는다.

 

 간혹 짓궂은 톳제비는 심술쟁이 놀부 같은 인간을 잡아다

자지를 열댓 발이나 늘여 가지고 강물에 다리를 놓는다지만 그런

다리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어쩌다가 어느 산막

뒤에 쌓아둔 나뭇가리나 보리밭 한 녘이 톳제비들 때문에 어질러졌다는

말은 있지만, 절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면 시퍼런 불덩어리가 벌벌 날아다닌다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사람들이 겁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톳제비는

가난하고 어진 사람들의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이나 불교의 부처님은 너무도 높고 까다로워서 수많은 계율이

붙어 다니지만 톳제비는 제멋대로다. 너무 볼품없으니 힘으로나

권위로도 다스릴 수 없어서 그런지 인간들보다 좀 더 낮은 위치에서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위대한 과학이나 위대한 종교는 인간을

오히려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지만 톳제비는 인간의 순수를 파괴하지

않고 보호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복을 내리지도 못하지만 악으로

다스릴 줄은 더구나 모른다.


 과학문명이 밀려들면서 톳제비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애당초 인간의 양심 회복을 위해 등장했던 종교조차 인간의 자유의지를

막아 버리고 세력 집단으로 둔갑해 버렸다. 세력 확산을 성취하려면 온갖

방법이 뒤따라야 한다. 병을 고쳐주고 돈을 벌게하고 자손을 번성시키고 오래

살며, 마지막엔 죽어서도 영원한 복락福樂을 누린다는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어쨌든 종교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과 인간끼리 서로 섬기며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현재의 종교는 그것을 못 하고 있다. 톳제비를

잃어버리게 된 슬픔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