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매화찬梅花讚 / 김진섭

윤소천 2014. 3. 2. 21:58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를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初地上的인 비현세적非現世的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던져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同化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 달 아래 처연悽然히

조응照應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對比的 배경으로 삼은 다음 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親和한 동감同感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굴복감屈伏感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이 태탕駘蕩한 계절에 난만爛漫히 피는 농염한 백화百花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超高하고 견개狷介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찬 돌같이 딱딱한 엄동嚴冬, 모든 풀

온갖 나무가 모조리 눈을 굳이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어떠한

자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生動을 요구할 바 없을 이때에,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寒氣를 한기로 여기지 않고 쉽사리 피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辛酸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先驅者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초淸楚하고

가향佳香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氣品과 아취雅趣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相通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結果된 매실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象徵함이겟고, 말할 수

없이 신산한 맛을 극極하고 있는 것 마저 선구자다워 재미있다. 

 

매화가 조춘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한嚴寒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發花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强靭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고유의 수종이 그 가치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를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古來로 귀중한 의약의 자資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 밖에 없다.

 

 여하 간에 나는 매화만큼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영춘迎春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분매盆梅에는

담담淡淡한 가운데 창연蒼然한 고전미가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청고淸高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