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새벽종을 치면서 / 권정생

윤소천 2014. 3. 12. 06:40

 

 

 

 겨울의 새벽하늘은 참 아름답다. 종을 치면서 나는 줄곧

이 아름다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성에가 끼고 꼬장꼬장 얼어버린

종 줄을 잡은 손이 무척 시리지만, 나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 가장

효과적으로 종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맨손으로 종 줄을 잡고

쳐야만 서툴지 않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번

종 줄을 잡아당기는 데 정성이 가기 마련이다. 깨끗한 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과 종소리가 한데 어울려 더없이 성스럽게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지난 한가윗날, 어릴 적에 도회지로 이사를 간 종희라는

아이가 오랜만에 고향에 다니러 왔다. 대학 2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된 종희는 내게 물었다. “집사님, 여기 계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내 대답에 종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는

한 30년은 됐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님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기 계신 것만 같아요.” 종희뿐만 아니라 어릴 때 주일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가까이 있거나 멀리 갔거나 한결같이 이 산골 예배당 문간

조그만 방에 혼자 사는 종지기인 나를 옛날애기 속 주인공처럼 착각하고

있다. 내 생활이 남들과 달라서 일까? 아니면 고된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세월의 흐름이 그만큼 지루했던 탓일까? 어쨌든 나는 12월이

되면 새벽종을 치면서 많은 얼굴을 떠올린다.

 

외로워지면 누군가 그리워지고, 그리워지면 밉던 얼굴도 보고

싶어지고, 보지 못하는 설움 때문에 가슴이 아파진다. 사방이 아직 어둡고

적막한 이 새벽에 느끼는 고독은 형언하기 어렵도록 절실한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일흔 살의 장로님은, 추운 새벽에 종을

치는 나를 생각해서 따뜻한 이불 속에 그냥 누워 있을 수 없어 기도하러

나오신다고한다. 그러나 정작 종을 치는 나는 이런 것과는 다른 무엇을

염원한다.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황당한 염원인지는 모르지만,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수만큼 나의 바람은 한없이 많다. 종을 한 번

잡아당기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듯 쏟아지는 나의 바람들.

 

 불치병을 가진 아랫마을 그 애의 건강을, 이 새벽에도 혼자

외롭게 주무시는 핏골산 밑 할머니의 앞날을, 통일이 와야만 할아버지를

뵈올 수 있다는 윗마을 승국이 형제의 소원을, 그리고는 어서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이 와서 전쟁이 없어지고, 주림이 없어지고, 슬픔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사막에도 샘이 솟고, 무서운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뒹굴고, 독사의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 장난치고, 다시는 헤어짐도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가 오기를...... 이런 것들을 끝도 없이 쏟아

놓으며 예순 번이 넘도록 치던 새벽종을 그친다. 이때쯤 뒷산 솔밭 속에서

곤히 자던 다람쥐랑 산토끼가 깨어나 오줌을 쭈르르

누고는 다시 쭈그리고 잠들게다.

    

 < 샘터. 19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