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1997년에 낸 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많은 오해가
뒤따랐던 제목이기도 하고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떤 이는 "이 시집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못 사주겠네" 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가까운 벗들은 술자리에서
"자, 술 먹다가 죽어버리자!"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정말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도록 진정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시의 내면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되는 말로 사랑의 깊이와
무개를, 그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입니다.
실은 제가 이 시집의 제목을 이렇게 정하게된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에서 발간되는 월간"해인"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해인"지를 꼭 읽었습니다.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전을 어렵게 해설해놓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잔잔하게
숨어 있는 불성을 저절로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어서
불교에 대해 무지했던 제 마음이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었습이다.
그런데 한 번은 큰스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저는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등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아니,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했으며, 마음 속에 큰 바위
하나가 '쿵쿵' 소리를 내며 끝없이 굴러가는듯 했습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강한 질책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 나는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에 그토록 연연하는가.'
누가 죽비로 제 마음을 강하게 내리친 것 같아 저는 한 동안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동안 사랑을 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그러면서도 또 사랑의 벼랑 끝으로 뻗쳐나온
나무뿌리에 매달린 삶을 살아왔다는, 그런 후회와 반성이 뒤섞인 자책의
마음이 그만 저를 주저앉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마저 내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얻으려고만 한 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 어머니가 제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 청년이 아름다운 한 아름다운 아가씨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얼굴과는 다르게 아주 독한 마음을 가진 아가씨였습니다.
아가씨는 청년이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는지 확인해야 하겠다면서,
청년에게 자기를 사랑한다면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자기 앞에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청년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두 손에 들고 아가씨의 사랑을 얻게 된 기쁨에 들떠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있는 힘껏 달음박질쳐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너무
서두른 나머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이
땅바닥에 툭 굴러 떨어졌습니다. 청년은 놀란 얼굴로 땅바닥에
떨어진 어머니의 심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의 심장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애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 조심하거라."
저는 그 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치 그 청년이 제 자신인
것만 같아 한동안 몸 둘바를 몰랐습니다. 그때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말씀이 부처님 말씀인줄을 몰랐습니다만, 저는 그 말씀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단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시작노트 한켠에 단단히 메모를
해두고 감히 떨리는 마음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혹시 시집을 내게
된다면 이 말씀을 시집 제목으로 삼으리라.' 시집이 나오자 그 말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저처럼 충격을 받았는지 시집을 찾는 이가 예상외로 많았습니다.
그건 많은 이들이 그 말씀을 죽음에 이르도록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사랑의 진정성과 절대성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삶과 죽음이 둘로 나누어질 수 없듯이 사랑과 죽음 또한 둘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의 동의어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저는 늘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그래도 저는 아직 사랑 제대로 못합니다. 부처님의 그 말씀을 바탕으로
쓴 시 "그리운 부석사"를 남몰래 암송해 보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게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밤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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