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상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백성호

윤소천 2022. 8. 11. 07:58

 

 

 

 

중국의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않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로 유명합니다.

하루는 젊은 스님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스님, 부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놈아, 너는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느냐. 만약 소를 찾으면 그 다음은 어찌할까요?

소를 탔으면 갈 길을 가야지, 왜 머뭇거리느냐.

그럼 그 소를 어떻게 간직할까요?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라. 그게 목동이 할 일이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스님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백장선사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며 법당을 나갔습니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불교에선 깨달음을 소에 비유합니다. 사찰 법당의 벽에도

동자가 소를 찾는 구도의 과정을 담은 십우도(十牛圖)를 그려 놓습니다.

중국에서는 소 대신 말이, 티베트에서는 코끼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십우도 혹은 심우도(尋牛圖)는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참 흥미롭습니다.

일화 속의 젊은 스님이 구하는 답도 십우도에 몽땅 담겨 있거든요.

어디 볼까요. 십우도의 첫 그림, 혹시 기억나시나요?

소는 없고, 끊어진 고삐만 손에 든 동자의 모습 말입니다.

왜 끊어진 고삐일까요. 본래는 나의 소였다는 얘기죠.

본래 부처라는 수행의 첫 단추를 보여주는 겁니다. 수행이란 결국

부처가 부처를 찾는 격이죠. 그게 부처가 어디에 있습니까란 젊은 스님의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소를 타고서도 소를 찾고 있는 겁니다.

  

자, 다음 그림을 볼까요.

이리저리 헤매던 동자는 결국 소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고삐를 걸어 씨름을 합니다. 끌고 가기가 쉽지 않죠. 왜냐고요?

그 소가 바로 자신이니까요. 세상에 나보다 힘겨운 상대가 있을까요.

힘찬 앞발은 나의 고집이고, 거센 두 뿔은 나의 착각입니다.

씨름을 거듭하던 동자는 결국 고삐를 놓아 버립니다.

그 순간 뒷걸음질만 치던 소가 동자에게 다가옵니다. 거칠고 힘센 소,

거칠고 힘센 나를 상대할 때 마음의 고삐를 풀라는 겁니다.

움켜쥔 마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뀔 때 비로소 소가 내게 걸어옵니다.

 

그렇게 소를 찾으면 어찌할까요. 백장선사는 갈 길을 가라고 합니다.

그게 어떤 길일까요. 바로 내 앞에 놓인 길이죠.

우리의 생활이자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 속에서 소를 마음껏 굴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젊은 스님이 또 묻습니다. 그 소를 어떻게 간직할까요?

젊은 스님은 걱정이 되는 겁니다. 행여 집은 소를 다시 놓치면 어떡하나 하고요.

그래서 소를 잃지 않는 법을 물은 겁니다.

내가 소가 되고,소가 내가 되는 방법을 말입니다.

백장선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

소를 잘 몰아야 한다는 겁니다. 밭은 마음입니다.

소를 찾았으니 본래 마음에서 소가 뛰어놀게 하라는 겁니다.

그게 조화로운 소몰이죠. 그런데 젊은 스님은 한 술 더 뜹니다.

백장선사의 답을 듣고서 이하! 하는 깨침이 있었던 거죠.

깨침의 눈으로 봤더니 나의 밭과 백장의 밭이 하나였던 겁니다.

그래서 젊은 스님은 외칩니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실은 눈앞에 펼쳐진 이 세상, 이 우주가 몽땅 나의 밭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 모두 나의 밭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이치를

오해하고, 착각할 때 우리의 소는 남의 밭, 에고(ego)의 밭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소는 목숨 걸고 수행하는 이들이나

찾는 거지. 우리처럼 넥타이 매고 직장 다니는 이들이 어떻게 소를 찾겠어?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기도 바쁜 주부가 어떻게 소를 찾겠어?

그래서 미리 겁을 먹고 포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백장선사는 말했습니다.

이놈아! 너는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느냐.

무슨 말일까요? 넥타이 맨 회사원도,

설거지를 하던 가정주부도 이미 소를 타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내게 없는 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타고 있는 소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직업적인 수행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소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이미 타고 있으니까요. 다만

타고 있으면서도 소를 탄 걸 모르고 있으니 찾으라는 겁니다.

그걸 찾으면 자유로운 삶, 걸림 없는 삶, 창조적인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소를 몰게 되니까요.

워! 워워! 큰 소리로 자신의 소를 불러보세요.

지금 어떤 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