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눈 꽃 / 도종환

윤소천 2015. 1. 21. 21:36

 

 

 

눈       

 

 

 

 

 

 

 

잔가지 솜털 하나까지 파르르 떨며

눈꽃을 피워들고 서 있는 달밤의 숲은

그대로가 은빛 빛나는 암유의 궁전입니다

보름 지나면서 달의 몸 한쪽이

녹아 없어진 이유를 알겠습니다

몸을 납처럼 녹여 이 숲에 부어버린 것입니다

달빛에 찍어낸 듯 나무들이 반짝이며 서 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 한 개씩의 공안입니다

다보여래가 증명하는 화려한 은유의 몸짓입니다

체온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깊고 외롭고 처절한 시간 속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적멸의 언어를 만나는 것입니다

생의 가장 헐벗은 시간을 견디는 자에게 내린

혹독한 시련을 찬란한 의상으로

바꾸어 입을 줄 아는 게 나무 말고 또 있느니

돌아가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돌아가는 동안 부디 침묵하고

돌아가 알게 되어도 겨울나무들의

소리 없는 배경으로 있어달라고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 허문정  (0) 2015.01.26
어두워질 무렵 / 도종환  (0) 2015.01.24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 종 환  (0) 2015.01.19
이 세상이 쓸쓸하여 / 도 종 환  (0) 2015.01.16
눈 물 / 나석중  (0) 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