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눈을 감고 / 홍윤숙

윤소천 2014. 2. 12. 18:25

 

 


 

 

언제부터인가 나는 눈을 감고 밥을 먹는다

 

눈을 감고 세상을 보고

 

눈을 감으면 씹는 밥알 한 알의 맛이

 

더 깊어지고

 

현란하게 채색된 세상이

 

한 장 수묵빛 그림이 되고

 

그 그림 위로 소슬한 바람 불어

 

하얗게 지워진다

 

눈을 감으면 떠돌던 내가

 

내안에 들어오고

 

온 세상 소요도 잠잠히 잦아들고

 

내 안의 물결치던 크고 작은 이랑들이

 

하나로 모여 허공을 만들고

 

출렁이던 가슴 서서히 가라앉고

 

텅 빈 허공이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해진다

 

아직 내가 이곳에 살이 있음이 눈부시고

 

죽음 같은 고독이 꽃잎인 양 향기로워진다

 

눈을 감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더욱 깊이 확인하고

 

깨닫고 사랑하기 위해서다

 

눈을 감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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