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旅愁)
첫 창문(窓門) 아래 와 섰을 때에는
피어린 목단(牧丹)의 꽃밭이었지만
둘째 창(窓) 아래 당도했을 땐
피가 아니라 피가 아니라
흘러내리는 물줄기더니,
바다가 되었다.
별아, 별아, 해, 달아, 별아, 별들아.
바다들이 닳아서 하늘 가며는
차돌같이 닳아서 하늘 가며는
해와 달이 되는가, 별이 되는가.
셋째 창문(窓門) 영창에 어리는 것은
바닷물이 닳아서 하늘로 가는
차돌같이 닳는 소리, 자지른 소리.
셋째 창문(窓門) 영창에 어리는 것은
가마솥이 끓어서 새로 솟구는
하이얀 김, 푸른 김, 사랑 김의 떼.
하지만 가기 싫네 또 몸 가지곤
가도 가도 안 끝나는 머나먼 여행(旅行)
뭉클리어 밀리는 머나먼 여행(旅行),
그리하여 사상(思想)만이 바람이 되어
흐르는 내 형제(兄弟)의 앞잡이로서
철따라 꽃나무에 기별을 하고,
옛 애인(愛人)의 창(窓)가에 기별을 하고,
날과 달을 에워싸고 돌아다닌다.
눈도 코도 김도 없는 바람이 되어
내 형제(兄弟)의 앞을 서서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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