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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 윤소천

며칠 전 남쪽 바닷가에 사는 친지로부터 매화가 피었다는 봄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곳은 춘설春雪이 밤새 내렸다. 뜰에 나가 보니 잔설이 쌓여있는 산수유 매화의 꽃눈이 또렷해져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졀, 무서리에 자지러진 가을을 지나 눈 내린 혹한의 겨울 그리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그러나 그 고뇌와 아픔의 시간 들이 이제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작은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흘러간다 /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꽃은 풀숲에서 웃는다 /어디를 보아도 고단한 눈은 이제 /책에서 읽은 것을 잊으려 한다 / 내가 읽었던 어려운 것들은 / 모두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으며 / 겨울날의 환상에 불과했다 / 나의 눈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 새..

소천의 수필 2024.11.23

가슴만 남은 솟대 - 책 머리에 / 윤소천

​사랑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과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면, 꿈결처럼 아득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 오고는 한다.서리맞아 희끗한 머리카락, 어느새 반생을 훌쩍 넘어 종심從心에 서 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절. 무지와 오욕의 늪을 헤매던 여름 골짜기, 어두운 밤길 별빛만바라보고 숨이 턱에 차 걷던 고갯길들. 늦가을 무서리에 자지러진 산마루는 바람마저드세었다. 그리고 한겨울 눈 내리고 내려, 잠속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먼 길 돌아와, 이제 봄이 오는 길목의 바람 잔 들길. 자연에 몸을 맡기고 침묵의 겨울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개안開眼한 내가 봄의 길목에 서 있다. 내 책상 위에는 소박한 빵과 스..

소천의 수필 2024.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