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觀想 휴가 / 박노해
장마 전에 난 정말 바쁘다감자알을 캐고 블루베리를 따고 오이를 따 소금에 절이고 별목련과 팥배나무를 캐다 심고 정원의 꽃나무들 가지치기를 하고수로를 파 물길을 내주고 나면 나의 7월은 끝, 휴가다 나의 여름휴가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상觀想 휴가 문 앞에 “묵언 중입니다. 방문 사절. 미안.” 팻말을 내걸고 전화기도 뉴스도 끊고 테라스에 집필 책상과 의자를 치우고 낮고 편안한 의자를 놓고 기대앉아 묵연히 앞산을 바라보다 구름을 바라보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걸 지켜보고 불볕에 이글거리는 들녘을 바라보다가 느닷없는 천둥번개와 빗금 쳐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순간 세계가 변하는 서늘한 기운에 잠깐 우수수 하다가 겹겹진 구름 사이로 태양빛이 쏟아지며 커다란 무지개가 갈라진 세계를 잇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