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4

수선화 / 박정순

눈부시지 않은 모습으로 뜰 앞 정원의 모퉁이에서 봄을 안내하는 등을 켠 아프로디테 가녀린 몸매로 긴 겨울 어이 참아내었는지 무명의 어둠 끌어안고 삭이고 삭인 고통의 흔적 그 얼굴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구시렁거리지도 않은 또 다른 별의 모습으로 꽃등을 켰다 항시 화려함이 아름다움은 아니듯 은은히 존재를 밝히는 가녀린 모습 앞에 마음도 한 자락의 옷을 벗고 노오란 향기와 모습 앞에 얼룩진 내 삶을 헹군다

읽고 싶은 시 2024.04.25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읽고 싶은 시 2024.04.16

결혼 축시 - 아가서를 대하며 / 이수창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하나님의 말씀 그대들의 삶 가운데 늘 가득하여라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아름다운 열매 그대들의 삶 가운데 늘 가득하여라 어여쁘고 어여쁜 그대들은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신부여 그대는 여자들 중에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고 신랑이여 그대는 남자들 중에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아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은 그대들이여 많은 물도 꺼치지 못하고 홍수라도 엄몰치 못할 영원한 행복 그대들의 삶 가운데 늘 피어올라라

읽고 싶은 시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