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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숙이 잠재한 환호歡呼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센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의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 냉소 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시원히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 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경기에서 우리 편이 이기는 걸 텔레비전을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일로 신이 나서 마음껏 환성을 지를 수 있었던 ..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 홍윤숙

우리는 왜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서면 마음 설렐까 그 길에 뜨는 해는 무엇이 다른가 큰 숲에 이르는 작은 숲이 있고 숲길 사이로 냇물 흐르고 냇물 건너 마을엔 어진 사람들 모여 살 것 같은 따뜻한 화덕에 활활 불 피워놓고 낯선 나그네들 융숭히 맞이할 것 같은 그 길 위에 하나의 세계가 다가오고 다가와 눈부신 아침을 열고 해와 달 별들이 새로운 날을 열 것 같은 악보처럼 늘어선 나무들이 어린 풀들 무릎에 안고 춤추는 길 실바람 머리칼 나부끼며 누구나 한번은 가보지 못한 길 위에 서서 세상을 여는 또하나의 열쇠를 가슴 두근거리며 두 손에 쥐어본다 그러나 열쇠는 이윽고 녹이 슬고 그 길도 지나온 길과 다를 것 없음을 희망과 실망은 언제나 손등과 손바닥 같은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읽고 싶은 시 201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