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차를 나누며 / 전원범

윤소천 2022. 3. 23. 22:20

 

 

 

약속할 수 없는 내일 이지만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가을의 잎으로 성(城)을 쌓다가 떠나고

삶의 모서리를 덮어오는

하얀 눈을 밟으며

산그늘이 내리는 시간

 

오다 가다가 스치는 인연으로 하여

우리는 가끔 이마를 마주하고

몇 마디 낮은 소리를 나누며

뜨거운 차를 마신다

 

온몸으로 젖어오는 삶의 무게를 풀어 놓고

꽃씨를 받듯 떨리는 손으로

한 모금 마음을 받으며 입술을 적시면

입안에 가만히 번지는 후감(後甘)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고

늘상 잔 안에 고여 오는 그리움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이지만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무지 ( The Waste Land ) / T.S. 엘리어트  (0) 2022.04.05
섬진강 / 전원범  (0) 2022.04.01
봄이 오면 나는 / 이해인  (0) 2022.03.23
삶은 섬이다 / 칼릴 지브란  (0) 2022.03.17
三月生 / 김현승  (0) 202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