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할 수 없는 내일 이지만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가을의 잎으로 성(城)을 쌓다가 떠나고
삶의 모서리를 덮어오는
하얀 눈을 밟으며
산그늘이 내리는 시간
오다 가다가 스치는 인연으로 하여
우리는 가끔 이마를 마주하고
몇 마디 낮은 소리를 나누며
뜨거운 차를 마신다
온몸으로 젖어오는 삶의 무게를 풀어 놓고
꽃씨를 받듯 떨리는 손으로
한 모금 마음을 받으며 입술을 적시면
입안에 가만히 번지는 후감(後甘)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고
늘상 잔 안에 고여 오는 그리움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이지만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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