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윤소천 2022. 3. 4. 07:51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 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체

 

나는 왜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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