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윤소천 2020. 11. 23. 11:25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진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 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 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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