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또다시 겨울 문턱에서 / 황동규

윤소천 2020. 11. 27. 11:46

 

 

 

대놓고 색기 부리던 단풍

땅에 내려 흙빛이 되었다.

개울에 들어간 녀석들은

찬 물빛 되었다.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이 없어도 될 것 같다.

 

눈 내리기 직전 단색의 하늘,

잎을 벗어버린 나무들,

곡식 거둬들인 빈 들판,

마음보다 몸 쪽이 먼저 속을 비우는구나.

산책길에서는 서리꽃 정교한 수정 조각들이

저녁 잡목 숲을 훤하게 만들고 있겠지.

이제 곧 이름 아는 새들이

눈의 흰 살결 속을 날 것이다.

이 세상에 눈물보다 밝은 것이 더러 남아 있어야

마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견딜만 한 생애가 그려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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