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뒷모습 / 주자청

윤소천 2019. 8. 16. 09:18

 

 

 

                                                      

  아버님을 뵙지 못한 지 벌써 2년 남짓이다.

지금도 내 가슴을 후비는 것은 아버님의 그 뒷모습이다. 그 해 겨울,

아버님께선 직장마저 그만두셨을 땐데 별안간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북경에서 부음을 받고 아버님

 계신 서주로 내려가 아버님을 모시고 문상하려 했다.

서주에서 아버님을 뵈었을 때엔 온 집안이 낭자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생전의 할머님이 생각나서 쏟아지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정황에도 아버님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군. 울어서 될 일이 있담 ?

 설마 산 입에 풀칠 못하겠나?” 집에 돌아가자 이리저리

팔 것은 팔고 잡힐 것은 잡히고 나니 살림은 쓸어간 듯 비어 버렸고,

거기다 장사 빚만 소복이 남아 있었다. 집안 꼴이

이쯤 되면 말이 아니었다. 할머님 장사 때문도

그렇지만, 아버님 실직 때문이었다.

 

 

이럭저럭 장사를 끝내고 그대로 헛간 같은 집에 붙어

있을 수도 없었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남경으로 가서 일자리나

구하려고 했고, 나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동행키로 했다. 남경에 가자 친구의 만류로 하루를 놀고

이튿날 오전 포구로 건너가 오후엔 북경 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아버님은 볼일 때문에 내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할 거라시면서

잘 아는 여관 머슴애를 시켜 나를 돌보게 했다. 그것도 서너 번이나

귀찮을 정도로 신신당부하고 가셨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사실 말이지 그때만 해도 내 나이 스물에

북경만도 벌써 두세 차례나 나들이했는지라 그렇게까지 할 거야 없었다.

아버님은 끝내 그래도 자기가 나를 전송해야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몇 번이나 그럴 것 없다고 말씀드려도“쓸데없는 소리,

여관 보이가 무엇 한담 ?”하면서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

 

 

 우린 강을 건너고 역으로 바삐 걸었다. 내가 차표를

사는 동안 아버님은 짐을 지키고 계셨다. 짐이 많아서 역부에게

팁이라도 쥐어 주어야 옮길 수 있었다. 아버님은 역부들과

또 흥정을 하시는 거다. 서투르게 말씀하는 폼이 내가 보기엔

너무 매끈하지 못해서 오히려 내가 참견해야만 했다.

내 소견에 내가 똑똑한 거로 생각되었다. 아버님 고집대로 흥정이

떨어지자 돈 몇 푼을 쥐어주고 짐을 찻간에 실어 올렸다.

아버님은 찻간에까지 따라 오르시더니 차창 쪽으로 자리를 잡아

주셨다. 아버님이 주신 자색 오버를 자리에 깔고 나는 우선 앉았다.

 

 

나더러 밤중에 짐 조심하고 감기 안 들게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런 가 했더니 또 판매원을 붙들고 나를

보살펴주라고 허리를 연신 굽히며 당부했다.

나는 속으로 아버님의 어두운 물정을 비웃고 있었다.

돈 보고 돈이나 빼앗아  먹는 그네들에게 왜 저리

헛짓을 하는가고, 그런가 하면 나도 이젠 나이깨나 주워

먹은 주제에 설마 자기 코앞의 일도 치러내지 못하지는

않을 텐데... 생각하면 정말 우쭐대던 소년이었다. 

 

 

 

 “아버지 이젠 들어가세요.” 돌아가시라는 청을

들은 척도 않으면서 창밖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아버지는 “얘 귤이나

몇 개 사올게 여기 앉아있거라” 하셨다. 아버지가 걸어 나가는

플렛홈 저쪽 울타리 밖으로 장수 서넛이 어정거리고 있었다. 저쪽

홈으로 가려면 철도를 건너야 하고, 이쪽 홈을 뛰어내려서 또

저쪽 홈을 기어올라야 한다. 뚱뚱하신 아버지에겐 힘든 일이었다.

내가 가야 마땅할 걸 한사코 당신이 가신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까만 베로 지어 만든 작은 모자를 쓰신 데다 까만

마꽐에 진한 쪽빛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기우뚱거리며

철도를 건너느라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히는 폼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철도를 건너고 난 뒤 저쪽 홈을 오르려고

온몸을 비비적거리면서 기는 모습은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두 손을 흙바닥에 밀착시키고 두 발 끝을 위쪽으로

오므리다가 그 뚱뚱한 궁둥이가 왼쪽으로 기우뚱할 때는

아차하게 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여기서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뜨겁게 뺨을 적시는 게 있었다. 나는 얼른

눈물을 닦았다. 내 눈물이 아버지께 들킬까 두려웠고

 또 남들이 볼까 두려웠다. 내가 다시 바깥쪽으로 눈길을 멍하니

돌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빨간 귤을 보듬고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도를 다시 건널 때 이번에는 귤을 땅에다 놓더니만 먼저

서서히 기어내려 서는 다시 그 귤을 보듬고 뚱그적거리고

오는 것이다. 이쪽으로 겨우 기어오르셨을 때 나는 얼른 부축해

드렸다. 같이 찻간에 올라 귤을 내 오버 위로 와르르 쏟았다.

아버지는 흙 묻은 옷을 털더니만 한숨 놓는 말소리로 “나 간다.

도착하는 즉시 편지 하렴” 하셨다. 승강구를 뛰어내려 몇 발을

옮기더니만 또 뒤돌아보며, “들어가라, 네 자리 살피렴” 하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고가는 인파 속에 파묻히자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앉자 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내렸다.

 

 

 

 우리 부자가 몇 해를 두고 동분서주해 봤지만 집안 꼴은

갈수록 기울어 갔다. 젊었을 적엔 살림을 늘리시느라 혼자서

타관 하늘을 떠돌며 많은 일도 저질러 보셨지만, 노경에

들어 이렇게 참담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었다. 아버님

심경이야 어디를 보나 어디를 가나 스스로를 결정할 수 없는 실의

그것뿐이었다. 가슴에 맺힌 울분이 더러는 화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나를 대하는 것도 옛날과는 달라지셨다.

그러나 뵙지 못한 2년 동안 내 잘못은 잊어버리시고 나를

걱정하고 그리고 내 아들을 걱정하는 그런

노파심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어느 날 북경으로 보내온 편지는 이러했다. 

"늙은 몸이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낸다. 다만 어깨 쪽이

무겁고 아파서 견딜 수 없구나. 젓가락을 들거나 붓을

잡기에도 제대로 말을 안 들으니 말이야. 아마 갈 날이 멀지

않은 모양이지..."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 치렁한

눈망울엔, 또 한 번 그 쪽빛 무명 두루마기와 까만 마꽐의

뒷모습이 뜨겁게 덤벼오고 있었다.

아 아! 다시 뵈올 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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