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사막의 가르침 / 정호승

윤소천 2019. 8. 12. 09:28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사막을 생각해본다, 중국 서안에서

비행기를 타고 둔황으로 가면서 내려다본 고비사막과, 명암의 대비가

극명하던 둔황의 모래 산 명사산과, 둔황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면서

보았던 사막을 생각한다. 사막은 단순히 지구의 육체가 아니라, 지구의 정신과

영혼의 모습인 것 같다. 사막을 생각하면 왠지 현실적 갈등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다 못해 경건해진다. 사막의 황량함이, 그 황량함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는 내 욕망의 밧줄을 한순간 놓아버리게

만든다. 아마 가난하다고 느껴지는 오늘의 내 삶이, 실은 그 얼마나

풍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나의 현재적 삶이 사막 한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막막하다. 뜨거운 모래바람만 불어올 뿐,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삶의 기본조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고통스럽다.

목이 마르다. 곧 죽을 것만 같다. 그동안 불행하다고 느껴졌던 내 삶의

 조건이 참으로 행복한 조건이었으며,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참으로 충족된 것들이었다고 절감된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노력했던 일들이 후회스럽다.

 

 문득 사막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고깔 모양을 한

모래무덤들이 떠오른다. 무서운 황사나 흑사 바람이 불어오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무덤들. 둔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막 아무 데나

묻고 싶은 곳에다 묻는다고 한다. 우리처럼 비싼 돈을 내고

호화 유택을 마련하지 않는다. 간혹 우리가 뗏장을 입히듯, 돌로 모래를

꾹꾹 눌러놓고 있는 게 보일 뿐이다. 나의 삶이 저 황량한

사막의 모래무덤 같은 것 이라면, 오늘 나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명사산을 오르는 관광객들은, 산 아래까지 잠시 낙타를 타고 간다.

가슴에 번호표를 달거나 살가죽에 그대로 번호표가 찍힌 낙타들은, 주인의

명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관광객을 태워 나르는 중노동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낙타들은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순응한다. 혹독한 낙타의

주인들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낙타는 마치 우리 민초들과 같은 존재다.

 나를 태워준 낙타의 눈이 너무나 선량해서, 차마 마주 처다 보기 힘들었다.

만일 내 눈이, 낙타의 선하디선한 눈을 반만 닮았다면, 내게 증오와

욕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생에 한 번쯤은, 광야나 사막에 홀로 서 있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일생에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사막화해봄으로서,

존재의 참모습을 발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막을 생각하면

그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실은 누구의 인생이든, 그 안에는 황량한

사막이 하나씩 존재해 있다. 다만 두려워 그 사막에 가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곳에는 사랑의 부재, 이해의 부재, 용서의 부재 등, 온통

부재의 덩어리가 모래만큼 쌓여있다. 그 사막을 걸어가 봄으로써

비로소 삶의 절대적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절대적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그 사막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막에 가서 신기루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신기루는 찬란하게 아름다우나,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버리고 없다. 멀리 사막의 백양나무 아래

고요히 호수의 물결이 분명 보였으나, 멀리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분명 가없는 수평선과 서해안 갯벌 같은 해안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나, 그것은 신기루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언제 있었느냐는 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추구하면

할수록, 인간의 욕망은 신기루처럼 헛되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한번 소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놓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내 것으로 만들 생각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것은 한낱 신기루 일뿐이다.

 

 나는 아침마다 사막을 묵상하면서, 내 존재의 참모습을 느낀다.

나는 사막의 모래 한 알보다 못한 존재다. 그동안 내 가슴이 기름진

옥토였기 때문에,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나도 선한 눈을 지니고,

사막을 건너가는 야생낙타가 되고 싶다.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사막의 물이 되면 더 좋겠다.

그러나 사막의 신기루가 되고 싶지 않다. 젊을 때는 산을

바라보아야하고, 나이가 들면 사막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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