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자기를 찾는다 / 홍윤숙

윤소천 2019. 8. 4. 08:42

 

 

 

 

 

 불타가 되신 석존의 구도정신은 생노병사를 짊어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었고 볼 수 있다. 그 지각에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의 석존의 생활은 세속적으로 행복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각에 이른 그의 마음은, 어떠한 부귀영화로도

 채울 수 없는 고뇌를 안고, 마침내 그 해결을 구해 사문 沙門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은 석존이 허망한 세속적 부귀영화에 가려져,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 나선 일대 결단이었던 것이다.

 

자기를 찾는다는 것의 중요함을 설교한 석존의 사상은,

젊은이들을 교화한 일화 가운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숲속에서 수십 명의 젊은이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셨을 때,

한 여자가 그들의 소지품을 훔쳐 달아났다. 젊은이들은 달아난

여자를 찾으려고 그 뒤를 쫒아갔다. 이 때 석존께서는

“그대들! 여자를 찾는 일과 그대를 찾는 일과 어느 쪽이 중요한가!”고

물으셨다고 한다. 실로 날카로운 이 한 마디 물음에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 부복해 엎드려 설교를 들었다는 이야기다.

 

 석존이 말씀하신 그 한 마디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더욱이 오늘 날과

같이 물질적 풍요와 생의 향락, 안일에 젖은 시대에 있어서랴.

기실 자기를 찾는다는 일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일이며, 바로

그 문제는 소크라테스 시대로부터 철학의 테마가 되어

왔던 것이다. 사실 인간행위의 중심핵인 ‘자기’란, 아는 주체인

동시에 알려지는 객체이기도 하며, 따라서 자기를

깨달았을 때, 다시 말하여 완전히 자기를 객체로 볼 수 있을 때,

사람은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로부터 자유로워 지기도하고

, 임의로 자신의 행동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안다는 일은 정확히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말하자면 ‘내가 누구라고

알고 있다’라는 말과 ‘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누구라고 알고 있다’는 사고는, 더 이상 변화 발전이 없이 고정관념에

갇힌 상태인데 비해, ‘내가 누구인가’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를 알려는 노력, 계속된 자기 탐구의 상태다. 

 

 사회의 사표가 되는 많은 지도층 인사며 위정자들,

적어도 자기를 알고 있다는 각자覺者들이 대부분 원자인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진실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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