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침묵의 눈 / 법정

윤소천 2019. 10. 30. 09:20

 

 

 

 

선가에 '목격전수(目擊傳授)' 라는 말이 있다. 입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준다는 뜻이다. 사람끼리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사실은 언어 이전의 눈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은 설명하고 해설하고, 또 주석을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끄러움이 따르지만, 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주 보면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속까지도 훤히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는 소리내는 말 보다도 오희려 침묵의 눈으로 뜻을

전하고 받아드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은 어디까지나 '창문'에 지나지

않는다.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타날 뿐, 그렇기 때문에 창문인 그 눈을 통해

우리들은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길에서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 있는 눈, 출세를 위해 약삭빠르게 처신하느라고 노상

흘깃 흘깃 곁눈질을 하는 눈, 앉은 자리가 편치 않음인지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눈,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 등등한

그런 눈을 대할 때 우리는 살맛을 잃는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차디찬 눈초리는 그래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에 호소할 길마저 없는 사람들의 그 불행한

눈만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굽어보는

 그 눈이 우리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컷 부림을 당하다가

아무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소의 억울하고 슬픈 그 눈을 보라.

그러나 쇠고기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은 그 눈이 표현하고 있는

생명의 절규를 읽어 내지 못한다. 나만 맛있게

잘먹고 잘 살면 그만이니까.

 

생떽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조종사인 한 사나이는

비행기 사고로 조난을 당한다. 그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먹지도

못한 채 며칠을 걷다가 쓰러져 가물가물 사경을 헤맨다.

그때 문득 아내의 얼굴이,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라디오 앞에서

자기가 살아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눈들이 떠오르자,

이제는 자기 자신이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그 눈들을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들의

슬픔과 기쁨이 자기 손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침내 그들

곁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친구들의 맑은 눈이 그를 살려낸 것이다.

 맑고 선량하고 고요한, 그래서 조금은 슬프게 보이는 눈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일 수 있다.

 

10여 년 전 산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수녀님의 눈을

나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그 눈길과 마주쳤을 때 내 안에서는

전율 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득한 전생부터 길이 들어 온

침묵의 눈이었다. 그 눈은 밖으로 내닫기만 하는 현대 여성의 들뜬 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안으로 다스리는 맑고 고요한 수행자의 눈이었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열려 있다. 내면의 길을 통해

사물과 현상너머의 일까지도 멀리 내다볼줄 안다. 그때의 그 눈길이

때때로 나 자신을 맑게 정화시켜주고 있다.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는 말은 조금도 빈말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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