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겨울 과수원에서 / 구 상

윤소천 2019. 11. 27. 10:38


겨울 과수원에서





흰 눈이 소금같이 뿌려진

폐(肺)의 공동(空洞)처럼 뻥 뚫린 구덩이 옆에

한 그루 매화의 굵고 검은 가지가

승리의 V자를 지었고

그 언저리를 부활의 화관인 듯

꽃이 만발하다.


"보라! 나의 안에 생명을 둔 자

죽어도 죽지 않으리니

보이지 않는 실체를

너희는 의심치 말라"


까치가 한 마리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해롱대며 날아다닌다.


폐(肺)의 공동(空洞)처럼 뻥 뚫린 구덩이 옆에

한 그루 아름드리 사과나무가

송장처럼 뻐드러져 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사내가

지게를 지고 와서

도끼로 마른 가지를 쳐내고

몸뚱이를 패서 지고 간다.


"보라! 형벌의 불 아궁 속으로 던져질

망자의 몰골을,

그러므로 너희는 현존의 뿌리를

병들지 않도록 삼가라"


얼어붙은 하늘에 까마귀가

까옥까옥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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