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오 월 / 피천득

윤소천 2016. 5. 14. 12:00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을 오월, 불현 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通告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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